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경주 황리단길에서 답을 얻다

정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15 17:21

수정 2018.01.15 17:21

[기자수첩] 경주 황리단길에서 답을 얻다

요즘 경주에 가면 불국사, 석굴암만큼 볼만한 필수코스로 황리단길이 꼽힌다.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처럼 젊은 감각의 음식점이나 카페가 밀집해 형성된 길에 'O리단길'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경주에도 황남동에 황리단길이란 게 생겼다고 했다.

경주시 황남동 봉황로 내남사거리에서 황남동 주민센터까지 이어지는 편도 1차선 좁은 도로가 황리단길의 실체다. 주변 대릉원의 크고 작은 왕릉이 주는 천년의 아우라에 눌려 더 좁게 느껴지기도 한다. 황리단길이 시작되는 내남사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주변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가게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큰 창과 밝은 조명이 돋보이는 카페, 태국 길거리 음식이 주메뉴인 식당. 그 사이에 있는 경주 황남빵집이 어색할 정도다.
어디가 황리단길인지 굳이 찾을 필요가 없었던 건, 나처럼 카메라를 손에 든 사람들이 한 방향을 향해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 초입부터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는 카페, 음식점, 잡화점이 차례로 나왔다. 건물은 분명 1960~1970년대에 지어졌을 법한 낡은 외형 그대로인데, 뼈대와 기와지붕만 남기고 나머지는 정말 이태원을 털어 넣은 느낌이다. 가게 주인들은 30대 초·중반을 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젊은 사장들은 벽에 그림을 그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 좋은 사진 포인트를 만들고, 가게 이름만 보아도 웃음 나는 상호명을 붙여 놓았다.

얼마 전 상가투자 전문가를 만나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SNS로 인해 주 소비층인 20~30대가 정보를 얻고 소비하는 과정 자체가 바뀌었고, 개인이 새로운 뉴스를 생산하는 시대가 되면서 과거 상가 투자의 공식과 같았던 '접근성' '가시성' 등이 통하지 않게 됐다는 것. 이제 '목이 좋은 자리'는 없으며 그보다 어떤 업종으로 사람들을 끌 매력적인 가게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원래 황리단길도 인근 대릉원과 한옥마을로 인해 문화재 보존 등의 명목으로 증개축이 어려워 낮은 건물이 그대로 유지된 곳이었다.
그곳에 20~30대 사장들이 젊은 감각을 입힌 가게를 하나둘 만들었다. 길이 명소가 되고 관광상품이 됐다.
황리단길에는 청년창업, 지역균형발전, 관광산업 활성화와 같은 무겁고 엄숙한 과제에 대한 정답이 그야말로 자유롭게 풀어져 있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건설부동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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