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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재무학회칼럼] '오너' 기업과 '주인 없는' 기업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16 17:15

수정 2018.01.16 17:15

[한미재무학회칼럼] '오너' 기업과 '주인 없는' 기업

얼마 전 금융지주회사의 회장 선임 절차 및 과정에 대해 감독당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는데, 이에 따라 관치금융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된 바 있다. 국내 1금융권은 소위 대표적인 '주인 없는' 기업이다. 엄격한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산업자본은 시중은행의 의결권을 4%까지만 행사하도록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주인 없는 기업의 또 다른 한 축은 포스코, KT 등 민영화된 공기업이다. 반면 위 기업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을 국내 언론은 대개 오너 기업으로 칭한다.

우선 이런 명칭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상법상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다. 이론적으로도 회사의 성패와 가장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당사자는 주주이기 때문에 주주에게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의결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국내에서 통용되는 표현대로라면 대부분의 미국 대기업들은 다 주인 없는 기업이다. 포드, 월마트, 일부 신생기업을 제외하고 제너럴일렉트릭(GE), 제너럴모터스(GM) 등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미국 기업은 지분이 분산 소유돼 있어 기껏해야 2~3%를 보유한 외부의 기관투자자가 최대주주인 경우가 많다.

학계에서는 대개 10% 또는 20%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를 지배주주(Controlling Shareholder)라고 지칭한다. 국내에서 오너로 불리는 이들에 대한 엄밀한 표현이 바로 지배주주인 것이다. 그런데 오너라는 표현을 사용할 경우 지배주주들에게 실제 법적으로 부여된 권한을 넘어 회사에 대한 과도한 영향력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 예컨대 지배주주가 15% 지분을 보유한 상장기업이 있다고 하자. 만약 이 기업에서 100만큼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면 그중 15는 지배주주의 돈이지만, 사실 나머지 85는 나머지 주주의 돈이다. 그런데 이들을 오너라고 지칭하는 순간 회사 자산과 개인 재산 간 구분이 불분명해지고, 회사 재산을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을 위해 유용하더라도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비자금 조성은 엄연히 불법이고, 내용상으로는 절도에 가까운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이를 스캔들쯤으로 인식해 왔던 배경에는 오너들에 대해 부지불식간에 과도하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우리의 언어적 관행도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본다.

그렇다고 전문경영인 체제가 사전적으로 우월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주인 없는 기업들에서는 오히려 이해관계 상충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대리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심지어 정치권을 포함한 관련된 모든 이들이 회사를 망가지게 하고 형해화했던 것은 이런 주인 없는 기업의 비극이다. 주인 없는 기업으로 인식하는 순간 기업 자산을 유용하더라도 죄의식이 없다. 역시 우리의 언어적 관행의 또 다른 부작용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미국의 주인 없는 기업들은 최고경영자(CEO)를 어떻게 선임하고, 어떻게 장기 비전을 가지고 경영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가. CEO 선임은 당연히 이사회의 고유 권한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이사회가 기존 CEO에 의해 영향을 받는 문제점이 제기되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감독당국이 CEO 선임에 개입하는 일은 없다.
지분도 없는 미국 전문경영인이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을 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는 아마도 기업 성과에 연동되는 정교한 성과보수 체계와 비교적 장기적인 재임기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차제에 우리도 주인 없는 기업 또는 오너 기업이라는 표현을 자제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주인 없는 기업은 있을 수 없고, 100% 지분을 보유한 자영업자가 아닌 한 오너 기업도 없기 때문이다.

김우진 서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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