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 '대박' 좇는 대한민국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18 17:05

수정 2018.01.18 17:05

[차장칼럼] '대박' 좇는 대한민국

'대박 나세요.'

새해가 되면 우리가 가장 많이 건네고, 가장 많이 듣는 인사말 중 하나다. 그런데 궁금하다. 대박의 기준은 무엇일까. 집 사고, 차 사고, 명품가방 사고 …. 갖고 싶은 걸 다 살 수 있으면 만족할까. 사실 이 정도면 대박으로는 모자란 '왕대박' '초대박'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자신의 인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다소 추상적 정의가 가슴에 와닿는다.

우리에게 대박의 상징은 '로또복권'이다. 지금은 1등 당첨금이 초창기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5억원 안팎으로 줄었으나 인기는 여전하다.
혹자는 "1등이래야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 채를 살 수도 없는 수준인데 무슨 대박이냐"고 힐난한다. 하지만 실상은 보통의 직장인이 평생 벌어도 모으기 힘든 대박임에 틀림없다.

나눔로또에 따르면 지난해 로또복권 판매 규모는 약 3조7948억원으로 추산된다. 한 게임이 1000원이니 37억9000여게임이 팔린 셈이다. 통계청 추정 인구(5144만명)로 판매량을 나눠보면 1인당 74게임을 즐겼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확천금을 통해 '인생역전'을 꿈꾸는 이들이 최근에는 가상화폐로 몰려들고 있다. 직장인은 물론 주부와 대학생, 심지어 10대들까지 대박을 노리고 묻지마식 투자에 나서고 있다. "누구는 얼마를 벌었다더라"라는 소문이 곳곳에서 들린다.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풍이 불고 있다. 당연히 '나도 해볼까' 하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대박의 꿈은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불안에서 나온다. 그 이면에는 '더 이상 희망이 안 보인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이 담겨 있다. 대학을 나왔는데 취업이 안 되고,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은 안정적이지 못할 때 로또와 가상화폐 같은 유혹이 등장한다. '기댈 건 로또, 가상화폐밖에 없다'는 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가 캄캄한 '헬조선'에서 벗어나려면 단번에 대박을 터뜨려야 한다"고 말한다. '가상화폐가 마지막 희망' '이번 기회가 아니면 영원히 루저로 살 것' '가상화폐는 흙수저가 성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 등 인터넷 댓글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대박은 말 그대로 꿈이다. 누구나 꿈을 꾸는 동안은 행복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지나치게 대박을 좇다가는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 로또(lotto)는 이탈리아어로 행운을 의미한다.
로또가 행운만 가져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독이 든 성배처럼, 아담의 사과처럼 잘못 삼키면 '한 방에 훅 간다'는 것은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모두가 대박의 기준을 오로지 '돈'에 두고 산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큰 대박이 나야 만족할 수 있을까. 오늘도 투자인지 투기인지 판가름하기 힘든, 칼날 위에 서 있는 대한민국이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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