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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다시 부는 사막의 폭풍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19 17:12

수정 2018.01.19 17:12

[월드리포트] 다시 부는 사막의 폭풍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6일(이하 현지시간) 시리아 내에 남은 이슬람 극단조직 '이슬람국가(IS)'를 완전히 격퇴했다고 선언했다. 3일 뒤 이라크 역시 자국에서 IS를 박멸했다고 전했다. 지난 3년여 동안 국경을 넘나들며 숱한 피를 뿌렸던 IS가 몰락하면서 마침내 이 혼란한 중동에도 평화가 찾아오는 듯 보였다. 그리고 한 달 남짓 지난 이달 13일, 시리아 북부에 다시 포탄이 비처럼 쏟아졌다. 이번에는 터키였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다음날 연설에서 며칠 후에 시리아를 침공하겠다고 말했다.


포탄이 떨어진 곳은 시리아 알레포주에 위치한 쿠르드족 민병대 근거지였다. 쿠르드족의 힘을 빌려 IS와 싸웠던 시리아와 이라크 정부는 약속이나 한 듯이 나란히 이들에게 등을 돌렸다. 이제 IS는 몰락했지만 중동에는 다시금 전운이 감돌고 있다. 그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은 바로 세계 최대의 난민집단이자 수백년 동안 독립을 꿈꿔온 쿠르드족이다.

중동 내 민족 구성에서 네번째로 인구가 많은 쿠르드족은 약 3200만명으로 추정되며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지닌 민족이다. 기원전 9세기께 자그로스산맥 근처에 존재했던 메디아 왕국의 후손으로 알려진 이들은 중세시대 이슬람교로 개종한 뒤 아랍제국에 편입됐고 이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쿠르드족은 오스만에게 서쪽으로는 터키 남부, 동쪽으로는 이란 서부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 '쿠르디스탄'이라는 자치구를 인정받았으나 국가를 이루지는 못했다. 이들은 이후 1차 세계대전 중에 독립시켜주겠다는 영국의 약속을 믿고 오스만과 싸웠지만 배신당했다. 영국 등 승전국들은 오스만의 영토를 입맛대로 나누면서 쿠르드족을 무시했고 그 결과 쿠르드족은 터키와 이라크, 아르메니아, 시리아, 이란 일대에 흩어져 살게 됐다. 현재 쿠르드 인구의 절반은 터키에 살고 있으며 나머지 쿠르드족은 이라크에 약 500만명, 이란에 약 800만명, 그 외 시리아 등에 약 200만명이 살고 있다.

1차 대전 이후 나눠진 쿠르드족은 끊임없이 독립을 시도하며 수없는 박해를 받았지만 제각기 살길을 찾았다. 이란의 쿠르드족은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이란 편을 들며 현지 사회에 융화됐고,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1992년 이후 이라크 북부 3개주에 자치정부를 세웠다. 시리아의 쿠르드족은 2016년에 자치정부 건설을 선언했다. 가장 많은 쿠르드족이 사는 터키의 경우 온건파인 인민민주당(HDP)과 강경파 쿠르드노동자당(PKK)이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 쿠르드족은 2014년 IS 사태가 발생하자 미국의 군수지원을 받으며 정부군과 함께 IS와 싸웠다. 이라크 쿠르드의 '페쉬메르가'나 시리아 쿠르드의 '인민수비대(YPG)' 같은 조직은 정부군을 능가하는 전투력을 보이며 명성을 떨쳤다. 이미 독립을 요구할 만한 명분을 쌓았다고 판단한 이라크의 쿠르드자치정부는 지난해 9월 독립투표를 감행했다. 그리고 다음 달 이라크 정부는 함께 싸웠던 전우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며 독립 시도를 짓밟았다.

이웃한 터키는 이를 지켜보고는 시리아로 눈을 돌렸다. IS가 쿠르드족과 싸운다는 이유로 국제적인 IS 토벌작전을 구경만 하던 터키는 IS가 사라진 뒤 쿠르드족이 그 공백을 메워 독립운동을 일으킬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시리아가 내전으로 혼란스러우니 직접 국경을 넘어서라도 쿠르드족 무장세력을 제거하겠다는 심산이다. 앞서 서방 언론들은 미국이 향후 시리아 국경 보호를 위해 실력이 검증된 쿠르드족 민병대를 중심으로 국경보안군을 만들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터키가 선제공격에 나선다면 미국과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쿠르드족의 봉기를 자극할 수도 있다.

지난 3년여 동안 중동을 폭풍처럼 휩쓴 IS 사태는 모래 속에 묻혀 있던 해묵은 갈등과 열망을 다시 세상에 드러냈다.
이제 새로운 먹구름이 다시 몰려오는 가운데 중동의 평화를 기대하기는 아직 갈 길이 멀다.

pjw@fnnews.com 박종원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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