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걸음]

혁신성장엔 '똑·게'형 정부가 필요하다

/사진=fnDB
윗사람을 평가하는 유명한 구별법이 있다. 우선 똑·부형,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스타일이다. 같이 일하기 피곤한 타입이란다. 다음은 똑똑하지만 게으른 똑·게형이 있다. 그리고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멍·부형, 멍청하면서 게으르기까지 한 멍·게형이 있다. 이 중 주변 동료들이 가장 같이 일하고 싶어하는 스타일은 똑·게형이란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바로 해답을 제시재 주지만 평소 잘 나서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를 나눠주기 때문이란다.

최악의 윗사람은 멍·부형이라고 한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 데나 나서는 바람에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타입 이란다.

'혁신성장'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에 맞춰 정부 각 부처들이 연일 올해 주요 업무계획을 내놓고 있다. 4차 산업혁명, 핀테크, 자율주행차, 블록체인 같은 신산업 용어들이 일제히 등장하고 신산업을 키우기 위한 예산도 듬뿍 배정해 놨다. 규제를 개선하겠다며 규제개혁 특별법도 만든다고 한다.

더럭 겁이 난다. 정책이 너무 많고 촘촘하다. 정책과 제도가 촘촘하면 규제가 된다.

특정 분야를 지원하기 위해 예산을 지원하려면 그에 맞는 규칙을 정해야 한다. 기존의 규칙에서 나오지 않던 새로운 산업군을 만드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인데, 나오지도 않은 4차 산업혁명형 산업을 위해 규칙부터 만든다고 하니 앞뒤가 바뀐 것처럼 보인다.

가상화폐·블록체인 정책이 대표다. 중앙서버에 정보를 저장하지 않고 정보를 분산시켜 보안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블록체인이고 그 과정에서 나온 히트상품이 가상화폐다. 집중된 권한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본질이다. 그런데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 내역을 들여다보겠다고 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정부가 육성한다고 한다.

아니다. 블록체인은 네트워크에 연결된 이해관계자들이 발전시키는 것이고 그들에게 권한이 분산돼야 한다. 그래야 산업이 된다.

자율주행차 산업을 위해 실험도시를 연다고 한다. 아니다. 특정 구간을 제외하고 자율주행차들이 일반도로를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운행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이 결합한 아마존고 같은 무인상점이 영업을 하려면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촘촘한 규정을 없애줘야 한다. 유통업체의 고용 직원 숫자를 셀 것이 아니라, 신기술과 서비스에 익숙한 직원을 얼마나 길러냈는지 세야 한다.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정부가 규칙을 자꾸 만들면 안된다. 오히려 있던 규칙을 버려야 한다. 혁신성장의 주체가 정부가 아닌 기업이니 기업과 창업가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정부는 한 발 물러서야 한다.

요즘 정부가 내놓은 정책마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윗사람 구별 기준으로 따지면 멍·부형이다.

진짜 혁신성장을 하려면 똑·게형 정부를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