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무너지는 미국의 경제주도권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한국 기업들의 경영전략도 불확실성에 빠지는 모습이다. 미국이 이끌던 글로벌 밸류체인이 혼돈에 빠진 데다 중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밸류체인은 아직 미덥지 않아서다. 제품 생산 과정과 판매경로 등 거대한 흐름을 구성하는 글로벌 밸류체인은 기업 경영의 성과를 내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요소다.

우선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로 점철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외정책이 새로운 불확실성을 낳고 있다. 과거 1960∼19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국제 분업질서 속에서 한국과 대만은 부품 하청기지라는 역할을 맡았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생산주도 위치를 굳건히 하는 동시에 동북아 외교패권의 교두보로서 중요한 위치를 갖는 한국과 대만을 우방국으로 끌어들이는 배경이 됐다.

이후 한국과 대만의 자체성장에 힘입어 이 같은 밸류체인이 약화됐으나 여전히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밸류체인은 강한 구심력을 가져왔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존의 거대한 밸류체인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삼성과 LG 세탁기를 겨냥해 발동한 세이프가드에 대해 미국의 경쟁사인 월풀이 내놓은 반응이 가관이다. 삼성과 LG 죽이기를 통해 월풀이 미국 대통령에게 감사하며 언급한 내용은 고작 미국 내 일자리 200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미국 중심의 글로벌 체인이 망가지면서 중국 주도의 글로벌 밸류체인이 확산되는 조짐이다. 그런데 중국 주도의 경제판에 합류하기엔 뭔가 찜찜하다는 분위기다. 중국 주도의 글로벌 밸류체인에 합류해 과연 얼마나 이익을 챙길 수 있는지 검증된 계산서를 아직 뽑을 수 없어서다. 물론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은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 주도의 시장판에 합류하는 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 정책과 같은 다자간 경제협력 프로젝트로 뻗어갈 때 속시원한 미래 성과를 관측하기 힘들다. 이처럼 미국 주도의 경제판이 깨지고 중국 주도의 경제판은 검증되지 못한 상황이 각국 기업의 글로벌 경영전략 수립에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보복 조치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당장 해외기업들의 목줄을 잡아 미국 내 공장을 짓게 만들고 과도한 세금폭탄을 던져 미국 기업에 특혜를 제공함으로써 당장 미국인들에게 달콤한 과실을 제공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다음이 문제다. 단기적 이익에 급급하는 사이 미국 주도의 글로벌 밸류체인도 서서히 무너지고 주변의 우방들도 하나둘 떠나게 된다.

문제는 미국 주도의 글로벌 밸류체인에 흥미를 잃게 될 기업들이 중국 주도의 경제판에 흔쾌히 탑승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글로벌 밸류체인의 지속 가능성과 경쟁력은 주도국의 경제력에만 의존하는 건 아니다. 외교안보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경쟁력 있는 주도국이 짜는 경제판이 설득력을 얻는다. 팍스아메리카나가 가능했던 건 기축통화인 달러의 힘과 이 같은 전반적인 영향력 때문에 가능했다. 이와 달리 중국 주도의 경제판에 대해선 중화민족 우선주의라는 송곳이 도사리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의 이익 극대화에만 기여할 뿐 합류자는 대충 털리고 나올 것이란 선입견이 강하다.

우리나라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돼 있다. 우선 우리가 주도적으로 밸류체인을 만드는 것인데 경제규모상 비현실적이다. 아니면 기존의 거대한 밸류체인에 적극 합류하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 주도의 밸류체인이 스스로 망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창자가 스스로 만들었던 룰과 신뢰를 깨고 있으니 합류자들로선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현재 미국이 가는 길에 대해 미국인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와 기업들이 동병상련을 느끼는 이유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