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 관치

중앙공급형 정책 약발 다해
보수 '꼰대'처럼 굴지 말고 고래심줄 관치 끊어버리길

하나금융지주 김정태 회장이 세번째 연임에 사실상 성공했다. 나는 김 회장이 뽑히는 과정을 자세히 살폈다. 이를 금융 관치의 시금석으로 봤기 때문이다. 처음엔 금융당국이 감 놔라 배 놔라 끼어들었다. '셀프 연임'을 문제 삼았다. 티격태격할 때 청와대가 금융당국에 마뜩잖은 신호를 보냈다. 화들짝 놀란 금융위.금감원이 뒤로 물러섰다. 시장이 관치를 이겼다. 만세라도 불러야 할까. 글쎄, 그건 아직 아니다.

관치는 여전히 팔팔하게 살아 있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그걸 국가주의라고 부른다. 그는 얼마 전 자유한국당이 주최한 행사에서 "시장이나 공동체가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국가가 칼을 들고 나선다"고 말했다. 그 예로 가상화폐를 들었다. "마치 정부가 시장을 폐쇄하면 가상화폐가 사라지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것이 국가주의적 몽상이고 미몽"이라고 했다.

국가주의적 관치 사례는 차고 넘친다. 정부가 휴대폰 통신료를 놓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관치다. 신용카드 수수료를 내리겠다는 약속은 관치이면서 동시에 월권이다. 대한민국에 국영 이동통신사, 국영 카드사는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마치 사기업을 제 주머니 속 공깃돌처럼 취급한다. 더 큰 관치는 노동시장, 부동산시장에서 볼 수 있다. 앞뒤 안 재고 올린 최저임금이 내내 말썽이다. 서울 강남을 겨냥한 부동산 응징 대책은 부작용이 꼬리를 문다. 그런데도 잔소리 말고 따라오란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금융 관치를 영화 '쇼생크 탈출'에 나온 '레드'(모건 프리드먼)에 비유한다. 장기복역 끝에 출소한 레드는 마트에 취직해서도 화장실에 갈 때마다 꼭 상사에게 허락을 받는다. 황 회장은 한국 금융산업이 꼭 그 신세라고 탄식한다. 황 회장은 증권.은행계를 두루 거쳐 협회장을 맡았다. 평소 성품으로 보아 말을 부풀리거나 없는 말을 지어낼 사람이 아니다.

원로 정치학자인 최장집 교수(고려대)는 '박정희 패러다임'을 통해 관치를 설명한다. 개발독재 시대에 형성된 관료.재벌 동맹이 그 뿌리다. 박근혜정부가 공 들인 창조경제혁신센터는 그 아류다. 진보 정권은 어떨까. 욕하면서 배운다더니 꼭 그 짝이다. 최 교수는 "박정희식 국가 운영모델은 권위주의 시기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헤게모니를 가졌던 국가의 운영원리이자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라고 했다('양손잡이 민주주의'.2017년). 최 교수는 "아직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가지 않았다"고 잘라 말한다. 박근혜.최순실 사태 때 우리는 권력이 어떻게 기업 팔을 비트는지 봤다.

4차 산업혁명이 꿈틀댄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정부가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자. 중앙난방식 정책 공급은 약발이 다했다. 내비게이션 '김기사' 앱을 만든 박종환 카카오모빌리티 이사는 "그냥 놔두는 게 기업을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타트업들은 되레 정부가 돕겠다고 나설까봐 겁낸다.

올 들어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뚝 떨어졌다. 그 밑바닥엔 관치 악습이 있다. 젊은이들은 "가상화폐가 뭔지 정부가 알기나 하는가"고 묻는다. 권력을 시장에 넘길 때가 됐다.
아니 지났다. 기억하자. 문재인정부가 싸워야 할 상대는 넋 나간 보수가 아니다. 그러니 관치에 물든 보수 '꼰대'처럼 굴지 마라. 진보의 진짜 적은 고래심줄처럼 질긴 관치, 박정희 패러다임이다.

곽인찬 논설실장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