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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ISDS 끊이지 않는 논쟁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30 17:04

수정 2018.01.30 17:04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제도 ISDS
[여의나루] ISDS 끊이지 않는 논쟁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고는 늘 거래가 있었다. 씨족 간에도, 부족 간에도, 국가 체제가 갖춰진 후에도 국경을 넘어 물건을 사고파는 일은 계속 발전해 왔다. 재화뿐 아니라 융성해진 산업자본도 더 높은 생산성을 찾아 국경을 넘나들게 됐다. 투자이다. 특히 지난 반세기여 동안 국경 너머로 시장을 넓혀온 많은 기업들이 세계화라는 흐름을 만들었고 다국적기업이라는 말도 생겼다.

인간사에 늘 다툼이 있어 왔듯이 국경을 넘어온 외국인 투자자도 그 투자를 유치한 주재국 정부와 간혹 다툼을 겪는다.
당연히 그 나라의 사법제도에 따라 법적 판단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다툼의 구도를 보면 일방은 국가 권력을 쥐고 있는 정부이고, 타방은 외국인이다 보니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등장한다. 1960년대부터 국제사회는 유엔 또는 세계은행 주관하에 이런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국제협약을 채택했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가 가입해 왔다. 그 내용의 핵심은 중립적 임시재판부를 양자 합의하에 설치하고 거기에서 시비를 가리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협약은 쌍방이 통상적 사법부가 아닌 중재 판정을 받자는 합의가 있어야만 적용되므로 외국인 투자자가 중재 판정을 받고 싶어도 타방인 투자 유치국이 반대하면 활용될 수 없는 제도상 맹점이 있었다.

무역·투자자유화의 선봉 역할을 해오던 미국이 1993년 캐나다·멕시코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으면서 외국인 투자자가 중재 판정을 희망하면 투자유치국은 반드시 동의해야 하도록 함으로써 중재 판정제도의 실행력을 높였다. 이렇게 제도로서 자리잡은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제도(ISDS)는 투자유치국 정부의 부당한 규제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하는 사후적 효과는 물론 정부가 함부로 규제를 남발하지 못하게 하는 예방적 효과도 있는 반면, 사법제도의 중대한 예외가 된다는 점과 투자자에 의한 남용 우려 등 문제점도 있어서 각국에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한·미 FTA는 시작, 협상, 타결 그리고 광우병 사태, 추가 협상, 비준동의의 각 고비마다 숱한 몸살을 앓고 태어났다. 그 우여곡절을 여기서 모두 쓸 수는 없겠으나 2011년 6월부터 11월까지 국회 비준동의 과정에서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온갖 주장을 동원하여 반대하다가 마지막에는 열 가지를 고쳐오라고 요구했고, 그중 하나가 ISDS 폐기였다. 민주당의 반대 논지는 이 제도가 사법주권을 포기하는 것일 뿐 아니라 공익 목적을 위한 정부의 규제 권한을 무력화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는 이 제도가 지구촌에서 보편화되고 있고 우리의 해외투자를 보호하는 실익이 있으며, 정부의 공익적 규제 권한은 한·미 FTA상에 조목조목 예외 또는 유보사항으로 확보돼 있다는 입장이었다. 내부적으로 우리 정부 실무진은 투자자에 의한 ISDS 남소를 방지하기 위한 개선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등장한 이후 세계 교역질서는 크게 흔들리고, 다자주의는 퇴색되고 있다. 놀랍게도 작년 8월 시작된 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서 미국 측은 ISDS를 선택사양으로 개정하자는 입장을 내놓았다. 지난해 12월 우리 정부 당국자도 국회 답변에서 이번 한·미 FTA 개정협상을 계기로 ISDS를 손보겠다고 했다.
미국이 입장을 180도 바꾼 속내가 무엇인지 좀 더 따져봐야겠지만 여하튼 미국이 먼저 개정하자고 나온 이상 어떻게든 개정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투자의 보호와 정부의 규제 권한 사이에 어려운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유럽연합(EU)은 아예 국제투자법원을 상설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김종훈 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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