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헤리티지를 찾아서]

서울미래유산에 남겨진 일제 신사의 유구

지령 5000호 이벤트

 '러일전쟁의 영웅' 노기 장군 부부 모신 '노기신사' 
한국전쟁 중 노기신사에 터 잡은 보육시설 '남산원'


*'다크 헤리티지'(Dark Heritage) 또는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는 '부정적 문화유산'을 말한다. '다크 헤리티지를 찾아서'는 주로 일제강점기 시대나 군부독재 시절 참혹한 참상이 벌어졌거나 그들의 통치와 권력 유지 수단으로 악용된 장소를 찾아가 과거와 오늘을 이야기한다. - 기자 말

▲ 눈이 쌓인 서울시 예장동 남산원 본관의 모습. 남산원에는 본관과 강당이 서울미래유산에 등록돼 있다./ 사진=정용부 기자

서울의 대표 명소 남산, 도심의 빌딩숲 사이에서 남산은 서울 시민의 쉼터인 동시에 우리 역사의 흉터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조선신궁이 그렇고 경성신사, 한양공원, 조선통감부가 그렇다. 그리고 노기신사도 있다.

일제는 조선을 지배하면서 내선일체를 꾀하기 위해 한반도 전역에 1400여 개에 달하는 신사와 사당을 지었다. 지금은 전국 어디에도 신사가 남아 있는 곳이 없는데,, 이 대부분은 해방되던 해인 1945년에 우리 국민들이 거의 파괴시켰다. 내목신사(乃木神社)로도 불리는 노기신사는 ‘러·일전쟁의 영웅’으로 불리는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1849.11.1~1912.9.13) 일본군 장군을 기리는 신사다.

노기 장군은 일본 내에서도 근대 군인 가운데 사무라이 정신의 무사로 추앙받고 있다. 아직 그를 기리는 신사가 일본 본토 곳곳에 남아 있을 정도이니, 그에 대한 일본인의 존경심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갈 만하다. 그러나 일본인의 입장에서야 군신(軍神)이자 ‘라스트 사무라이’일지라도 우리에겐 적국의 우두머리일 뿐이다.

■ 노기신사가 제국의 식민지에 들어선 이유 '군국주의에 딱 맞는 우상화'
일제강점기 조선에는 그의 이름을 딴 내목회(乃木會)도 있엇다. 이 단체는 노기 장군 부부의 뜻을 널리알려 식민교화의 수호신으로 모시자는 뜻을 모아 노기 부부 사망 20주기에 식년제를 열었고 뒤이어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얻어 본격적으로 신사 창건에 나섰다. 1931년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아시아 전체를 전쟁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군국주의에 딱 적합한 우상화였다.

부지는 남산 경성신사 옆 벚나무 계곡을 삼았다. 계곡 안쪽 국유지 1700여 평의 산림을 평평하게 골라 1934년 1월 공사를 시작해 같은 해 9월 13일 준공식을 열었다. 신사 입구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붉은색 난간이 있는 나무다리가 있었다.

상상해보자. 새소리가 재잘되고 벚꽃이 흐트러지게 핀 남산 자락에 올라 목조 다리 건너 다다른 1930년대 고즈넉한 신사의 풍경을, 다만 이곳이 일제의 신사라는 점만 뺀다면 더없이 좋지 않았을까.

▲ 노기 마레스케 일본군 장군의 얼굴과 노기신사 입구의 모습/ 사진=독립기념관

▲ 신사에 들어가기 전 참배자가 손을 씻는 수조. '세심'이라 쓰여있다./ 사진=정용부 기자

■ 일제 신사에서 해방조국의 꿈나무 키워낸 남산원
1952년 한국전쟁이 매듭되기 전 국군과 경찰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자녀 69명을 위해 보육원을 세웠다. 최기석 초대 군경유자녀보육원 원장은 노기신사 터에 자리를 잡았다.

전쟁으로 국토는 초토화되고 남아 있는 게 무엇이랴. 최 원장은 남아 있던 노기신사 본관을 시설로 사용했다. 그런데 1979년 들어 본관과 3동이 화재로 소실됐고 1993년에는 마지막 신사의 창고마저 헐면서 노기신사의 그 흔적이 거의 사라졌다.

답사를 가던 날 마침 눈이 내렸다. 남산원을 들어서자 운동장과 화단에는 예사롭지 않은 석재가 눈에 띄었다. 한눈에 봐도 요즘시대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이 석재는 신사에 사용됐던 유구들로 벤치 의자나 화단 지지대 등 남산원 곳곳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특히 노기신사 터를 증명하는 데미즈야(일본어: 手水舎)가 남았다. 이 돌 수조는 일본 신사나 사찰 경내에 두어 참배자가 참배하기 전 손이나 입을 씻는 용도로, 수조 앞면에는 마음을 씻으라는 뜻의 ‘세심’이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수조 기증 연도와 기증자가 쓰여져 있다. 그 뜻은 ‘타카기 토쿠야와, 타카기 사다코 부부가 봉납했다’라면서 ‘쇼와9년(1934년) 9월 어느 날’이라 한다. 원래 물이 채워져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낙엽이 쌓이고 빗물이 고인 상태다.

남산원 홈페이지의 과거 사진 중에선 석등을 거꾸로 뒤집어 테이블을 만들어 최 원장과 원생이 빙 둘러 앉은 사진이 있다. 이곳에서 ‘티타임’을 가지기도 한 모양이다.

전후 남산원은 정부와 각종 사회단체 및 주한미군의 도움을 많이 받아 가족을 잃은 아이들의 꿈을 키웠다. 강당 건물에 붙어 있는 표석엔 ‘미국의 원조’라 써있다.
서울시는 2013년 남산원 강당(8호)과 본관(9호)를 나란히 서울미래유산에 등록했다.

올해 서울시가 완성하는 ‘국치의 길’코스에는 남산원이 들어 있다. 서울시는 치욕스러운 역사도 역사인 만큼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보고 남아있는 유기를 그대로 둬 역사의 흔적을 둘러볼 수 있게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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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