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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균 기자가 만난 사람] JLPGA 활약 윤채영, 日 진출 초기엔 우울증..'즐기자' 마음먹자 기적처럼 톱10

정대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01 19:14

수정 2018.02.01 19:14

국내 투어 9년 만에 첫 우승 우승 뒤에도 흐름 좋지않아
日QT 응시 제안에 혹시나… 막상 덜컥 합격 JLPGA 진출
매일 텅빈 숙소서 늘 혼자 외로움에 심리치료도 받아
안되면 접자 마음 내려놓자 성적 오르고 팬들 많이 생겨
지난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 진출해 상금랭킹 35위에 안착한 윤채영이 올 시즌 1승을 목표로 강도 높은 동계 시즌을 보내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지난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 진출해 상금랭킹 35위에 안착한 윤채영이 올 시즌 1승을 목표로 강도 높은 동계 시즌을 보내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결혼요? 당연히 하고 싶죠."

그래서 30세 이전에는 소개팅에 전혀 응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1998년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시작해 올해로 21년째 골프 인생을 살고 있는 윤채영(31.한화큐셀)의 지극히 당연한 '바람'이다. 윤채영은 2006년 KLPGA투어에 데뷔, 9년만인 2014년 삼다수마스터스서 생애 첫 승이자 유일한 우승을 거뒀다. 그리고 퀄리파잉토너먼트(이하 QT)를 통해 2017년 홀연히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로 무대를 옮겼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겨울의 어느날, 서울 모처에서 체력훈련에 여념이 없는 그를 만났다.

윤채영이 골프에 입문한 건 어려서부터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다. 하굣길에 아빠(윤석관씨)가 연습하고 있는 골프연습장에 들러 골프채를 휘둘렀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자 오기가 생겼다. 그것이 골프에 점차 빠져들게 된 계기가 됐다. 그렇게 시작된 골프는 2005년 프로가 될 때까지는 순탄했다. 하지만 그 이듬해 투어에 데뷔하면서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됐다. 우승이 없는 시간이 길어진 것. 그러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윤채영은 "오랜 시간 우승이 없었다. '우승해야겠다'는 목표는 있었다. 힘들어도 그것을 놓을 순 없었다. 그러면서 끈기와 인내를 배웠다"며 "물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동기부여가 너무 강했다. 열심히 했다. 동기들은 물론 수년간 했던 KLPGA투어 홍보 모델 중에서도 우승이 없는 건 나뿐이었다. 그리고 9년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그 때는 정말 꿈만 같았다"고 첫 우승 당시를 회상했다.

첫 우승을 하고나면 그 다음은 술술 풀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2015년 시즌을 그럭저럭 보냈다. 그리고 2016년 시즌 초반도 흐름이 좋지 않았다. 그러자 김상균 감독(한화큐셀 골프단)이 '일본 QT에 응시해 보는게 어떻겠느냐'며 일본 진출을 권했다. 신청을 하면서도 '가는 게 맞나'라며 갈등했다. '1, 2차 예선은 경험삼아 응시했고 3, 4차는 오든 안오든 일단 합격은 하자'라는 각오로 임했다. 그런데 덜컥 합격을 했다. 그는 "솔직히 합격하고나서도 고민했다"며 "3, 4월 일본투어를 뛴 다음 적응 여부를 보고 결정하자고 생각했다. 지난해까지는 국내 시드가 있었기 때문에 적응 못하면 국내로 복귀할 생각이었다"고 일본 진출을 결정하기까지의 힘든 과정을 설명했다.

일본과 한국으로 오가며 뛸 생각이었는데 쉽지 않았다. 결국 국내 시드를 포기하기로 했다. 젊음을 바쳤던 투어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슬퍼졌다. 물론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초반에 공이 안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성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기술적인 것을 떠나 마음을 잡지 못한 것이 부진의 원인이었다. 게다가 외롭기까지 했다. 윤채영은 "시합 끝나고 숙소에 돌아오면 늘 혼자여서 외로웠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면서 우울증 증세까지 찾아왔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가 심리치료를 받을까도 생각했다"며 힘들었던 일본 진출 초기를 뒤돌아봤다.

틈나는대로 한국을 다녀갔다. 6월 중순까지 성적이 좋지 않아 자칫 내년 시드를 놓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경험은 다시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이 상황을 즐기자'라며 뭔가 깨우침이 왔다. 그러면서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을 살짝 즐기게 됐다"며 "'올해 안되면 여기서 접고 또 다른 길을 찾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성적이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해 6월 최고 상금액이 걸린 어스 먼다민컵에서 일본 진출 이후 첫 '톱 10'에 입상했다. 그러자 상금 랭킹이 쑥 올라갔다. 그런 뒤 국내로 들어와 1주일간 푹 쉬었다. 그리고 돌아가 2주 연속 준우승을 거뒀다. 그 중 두 번째 준우승한 대회는 너무 아까웠다. 마지막홀 2m 버디 퍼트가 홀을 돌고만 나오지 않았더라도 전체적인 분위기상 우승도 넘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게 길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열심히 했다. 일본 생활에 많은 도움을 준 후배 이민영(26.한화휴셀)과 틈만나면 맛집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만큼 많은 걸 내려 놓았다. 결국 상금 순위 35위로 시즌을 마치면서 그 다음해 시드를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성적이 좋아지면서 현지 팬도 많이 생겼다. 개중에는 2016년 초청 선수로 출전했던 JLPGA투어 야마하레이디스 때 3위를 한 것을 기억하는 팬들도 있었다. 최종 합격을 하고나서 일본 언론의 인터뷰 기사가 나간 것도 인지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됐다. 윤채영은 "오키나와 개막전이 생일과 겹쳤는데 팬들이 생일선물을 들고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중에서 삐뚤빼뚤 한글로 직접 쓴 편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며 "지난해 30개 대회에 출전했는데 29개 대회를 따라다닌 열성 팬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투어를 같이 할 정도로 열성적으로 따라 다녀도 선수의 연습이나 경기에 방해가 되는 일을 절대 하지 않는 게 일본 팬들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윤채영의 올 시즌 목표는 투어에서 1승을 거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누구보다고 강도 높은 동계 시즌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 달간 달콤한 휴식을 가진 그는 1월부터 국내서 체력훈련을 하고 있다. 훈련방법도 독특하다. 임팩트 강화를 위해 야구 타격 훈련, 긴 휴식을 취한 뒤 갑자기 골프채를 잡으면 나쁜 습관이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테니스 훈련, 하체 근력 강화를 위해 스키, 그리고 몸의 균형 유지 차원에서 필라테스를 처음하고 있는데 효과가 아주 좋다.

윤채영은 "작년은 초반 고생이 많았던 한 해였다. 이제 어느 정도 투어 적응도 했으니 올해는 기회가 오면 한 번쯤 우승하고 싶다"는 목표를 말하면서 "예전에는 35세까지 투어 활동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과연 올해는 넘길 수 있을까' 일년 단위로 생각이 바뀌게 된다. 그래도 35세까지는 활동하고 싶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결혼하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다.
윤채영은 "현재 사귀는 사람은 없다"면서 "직업은 상관 없다. 대신 책임감 있고 남자다우면 된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했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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