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은 동일, 가격은 반값" 외면받던 B급 제품의 반란

반품한 제품을 새 것과 비슷하게 재정비하는 '리퍼브 제품'
외관·성능에 아무 문제 없지만 가격은 무려 반값까지 할인
백화점·대형마트, 유통기한이 임박한 음식도 저렴하게 판매

비싼 집값에 혼수용품이라도 저렴하게 구매하려는 예비 신혼부부들이 많다. 리퍼브 상품 중 인기 있는 품목은 휴대폰,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공기청정기 등의 가전제품이다. 사진=연합뉴스

# 오는 4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 김진혁(가명·35)씨와 한우리(가명·32)씨는 혼수를 B급 제품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전세집을 마련하기 위해 적금을 깨고 대출을 받는 등 무리를 한 터라 혼수용품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기로 한 것이다.
4일 주요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가성비와 합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젊은 소비자들이 늘면서 일명 'B급'이라고 외면받던 상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B급 상품의 대표적인 예는 '리퍼비시 제품'(재공급, 이하 리퍼브)이다. 리퍼브 제품은 소비자의 변심으로 반품된 정상품이나 성능에 큰 문제가 없는 초기 불량품을 비롯해 전시 제품, 외면상 흠이 있어 신상품 수준으로 다시 내놓은 제품을 뜻한다. 소비자들은 정가 대비 약 50% 저렴한 가격에 새 것 못지않는 성능의 제품을 살 수 있어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처치곤란한 반품" 제조업체 고민으로 탄생한 리퍼브 시장
리퍼브 제품은 소비자들의 온라인 쇼핑몰 구매 건수가 증가하면서 등장했다. 실물이 아닌 인터넷에서 제품을 보고 산 소비자들은 반품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반품량이 늘어나면서 제조업체는 새 상품이 아닌 반품된 제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리퍼브 시장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신한카드 트렌드연구소가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간 고객 1,033만 명의 소비 패턴을 분석한 결과, 국내 리퍼브 시장의 매출규모는 2013년 1월 2800만원 수준에서 2017년 1월 1억9500만원을 넘어서며 약 10배 정도 커졌다.

리퍼브 제품은 특정 소비자가 사용한 중고 제품과는 다르다. 아예 사용하지 않은 제품이거나 1~2번 사용해 반품했더라도 새 제품과 비슷하게 재정비한다. 신상품과 똑같이 사후서비스(AS)도 제공한다. 가격은 제품의 상태, 물류 비용과 구입 비용 등을 고려해 저렴하게 책정한다. 외관이나 성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리퍼브 상품 중 인기 있는 품목은 휴대폰,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공기청정기 등의 가전제품이다.

특히 리퍼브 폰은 휴대폰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갤럭시노트FE'다. 갤럭시노트FE는 2016년 배터리 발화 사고로 단종된 갤럭시노트7 미개봉 제품과 미사용 부품을 활용해 만들어진 '갤럭시노트7 리퍼브 폰'이다.

배터리 용량만 300mAh 줄었고 외양과 디스플레이, 카메라와 메모리, 색상 등의 주요 사양은 갤럭시노트7과 같다. 하지만 갤럭시노트7의 출고가보다 무려 30만원이나 저렴해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여러 개의 가전제품을 한꺼번에 사야하는 예비 신혼부부나 자취생은 주로 리퍼브 제품을 공략한다. 직장인 임수현(33·가명)씨는 "직장이 집과 멀어서 자취를 시작했는데 장만할 가전제품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며 "새 것을 사기에는 부담되고 중고 제품을 사자니 껄끄러운 느낌이 들어서 리퍼브 제품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소셜커머스 위메프는 지난해 1월부터 리퍼브 제품을 모아 판매하는 '리퍼데이'를 진행하고 있다. 위메프 측은 지난해 12월 리퍼브 제품 매출이 같은 해 1월 대비 129.9% 늘었다고 밝혔다. 리퍼브 안마의자는 382.1%, 노트북은 375.2%로 매출이 올랐다. 지마켓, 11번가, 옥션 등의 오픈마켓도 리퍼브 상품을 별도로 파는 기획전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롯데마트 청량리점을 찾은 고객들이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포장이 훼손되어 할인 판매되는 상품을 고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리퍼브 시장의 핫 아이템으로 뜨는 '식품'
리퍼브 제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품목도 더욱 다양해졌다. 리퍼브 시장의 주요 품목이었던 가전제품, 생활용품에서 더 나아가 최근에는 식자재로 확대됐다. 유통기한이 임박했지만 먹어도 건강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음식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가 흔히 확인하는 유통기한은 식품의 판매가 허용된 기한을 말한다. 반면 소비기한은 식품을 섭취해도 건강이나 안전에 이상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는 최종 기한을 뜻한다. 즉, 일부 식품은 유통기한이 지났더라도 보관 조건에 따라 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소비기한이 남았지만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식품의 양은 상당히 많다. 식품산업협회에 따르면 손실비용만 연간 약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는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의 차이를 활용해 정가의 20~60% 할인된 가격으로 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진열기간이 오래됐거나 상품 포장이 미세하게 훼손된 식자재도 저렴하게 판매 중이다.

식품안전처 시험검사국 신성보 선임연구원은 "유통기한은 제조업체가 정한 판매 기간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곧바로 품질 변화가 진행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았어도 관리가 잘못된 식품은 변질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의 보관상태를 잘 따져보고 구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sjh321@fnnews.com 신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