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부동산의 정치학

조석장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04 17:11

수정 2018.02.04 17:11

[데스크 칼럼] 부동산의 정치학

2014년 9월 박근혜정부는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 주도로 9·11 부동산대책을 내놓았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비율 완화, 취득세 및 양도세 감면, 재건축 및 청약제도 등을 대폭 완화했다.

정부는 '여름에 겨울철 옷을 입고 있다'며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같은 정책을 시장에서는 정부가 '부동산을 통한 경기회복' 카드를 꺼내들었다고 해석했다. 그 후 엄청난 물량의 아파트 공급이 이뤄졌고, 부동산 열기는 서서히 달아올랐다. 시장은 '빚 내서 집 사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한번 달궈진 솥뚜껑은 쉽게 식지 않듯이 후끈 달아오른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불을 내뿜고 있다. 역대 정부들은 규제 완화와 강화를 반복하는 냉온탕식 부동산정책으로 일관했다. 이 과정에서 시장 플레이어(player)들은 그간의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정부의 정책 변화에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정부 스스로가 정책을 이길 수 있는 시장의 내성을 키우도록 자초한 것이다.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신화는 산업화 이후 50~60년이면 충분하다. 이제 부동산을 투기화하는 세력은 근절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정부가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 펼치는 노력은 정당하다. 불로소득이 근로소득을 앞서도록 놓아두면 그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참여정부의 실패를 거울 삼아 어느 정도 준비를 해두었다'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정책도 시장의 역습에 속수무책이다. 집권 이후 모두 6차례에 걸쳐 부동산대책을 내놨지만 집값 급등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고무공 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튀어나오는 풍선효과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바위 틈새를 파고드는 물길과 같이 시장은 규제를 교묘하게 피해가며 자기 살길을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소유에 대한 열망은 대단하다. 부동산은 남들과 차별화하겠다는 욕망의 대상이자 사회적 성공의 척도가 돼가고 있다. 강남아파트는 이미 휘귀재, 고급재, 사치재가 됐다. 강남의 고가주택 보유가 성공한 자산가로 인정받는 '트로피 자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에 따른 반작용도 크다. 부동산 격차에 따른 부의 양극화로 상대적 절망이 널리 퍼져가고 있는 점이다. 절망의 당사자는 부동산 폭등의 대열에 올라타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이다. 경제적 약자와 노인, 청년층이 최대 피해자다. 쏠림과 계층 및 세대 갈등, 강남과 비강남, 수도권과 비수도권이라는 지역갈등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래서 부동산정책은 경제정책이자 사회정책이며 정치여야 한다.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전략적 행보가 필수적이다. 모든 관련제도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확고한 비전과 로드맵으로 대처해야 한다. 방향은 맞는데 시장이 역습을 한다면 정책의 세밀함이 떨어졌다는 방증이다. 정부의 망원경은 괜찮은데 현미경이 문제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상황이 급하다 해도 완력으로 시장을 이기려 하면 안 된다. 욕망과 정면으로 맞서지 말고 부유층의 투자 물길도 터주는 지혜로움을 잊어선 안 된다.

그렇다고 강남 혼자만 가게 놔둘 수도 없다. 강남과 비강남, 서울과 지방의 균형도 신경써야 한다. 상류층과 중산층 및 서민층의 부의 편중도 고려해야 한다.
서민주거 안정을 놓쳐서도 안 되며, 중산층의 계층이동 사다리를 걷어차도 안 된다. 참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 공동체 성원들의 안정과 화합을 위해 해야 할 정치의 역할이다.

seokjang@fnnews.com 조석장 건설부동산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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