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로/삼성에게 국적이란

'삼성이 핵심사업부문의 미국 이전을 결정했다. 이 핵심부문은 연구개발(R&D)사업과 반도체사업. 삼성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논의도 끝났다. 이주하는 삼성 직원은 물론 가족 전원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키로했다. 삼성을 위한 사업장 이전 부지도 미국측에서 영구 무상 제공키로 합의됐다.'
이는 지난 1일 카카오톡을 통해 재계에 삽시간에 돌았던 찌라시(정보지) 내용이다.

놀랍고도 황당한 일이었다. 물론 삼성의 공식 반응은 "사실무근"이었다. 그래도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이처럼 삼성의 본사 해외 이전설이 제기된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삼성 본사 이전설은 '삼성공화국'이란 프레임이 등장하던 1990년대말부터 심심하면 터져나온 단골손님이다. 그간 삼성의 본사 이전은 반삼성 여론에 대한 반발심리 정도로 여겨져왔다. 실제로 삼성의 본사이전이 실현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이재용 삼성 부회장 2심 선고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나온 삼성 본사 이전설은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 부회장이 2심 판결에 따라 삼성 본사 이전도 배제할 수 없다는 기류가 감지됐다.

삼성 없는 한국경제를 상상해보자. 삼성 전체의 연간 매출은 300조원 이상이다. 주력인 삼성의 수출비중은 전체 20% 이상이다. 삼성은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이상이다. 삼성은 매년 1만2000명 가량의 청년 일자리도 창출해왔다. 삼성의 공백은 국가 경제에 재앙인 이유다.

삼성 본사 이전이 현실화 직전까지 간 이유는 뭘까.

근본적으론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반삼성' 기류가 원인이다. 삼성에 취업하길 바라면서도 '재벌=삼성'으로 욕하는 세태가 만연하다. 삼성은 매번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두고도 척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삼성이란 용광로에 기름을 부은 이슈는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린 이재용 삼성 부회장 재판이다. 헌법재판소가 '기업은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이 아니고,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당한 피해자'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반삼성 광풍에 밀려 국정농단의 '정치적 희생양'으로 내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의 선택지는 뻔했다. 삼성은 더이상 떨어질 바닥이 없어보였다. 더이상 삼성은 '사업보국'을 지켜야할 이유도 없어보였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다. 5일 2심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명예를 회복할 기회는 다시 준 것이다. 동시에 삼성의 본사 이전설을 한방에 잠재우는 판결이기도 하다. 이젠 삼성은 1년여의 리더십 공백에서 벗어나 국가대표 기업 답게 국민 신뢰 회복과 사업보국에 매진해야한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