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염주영 칼럼] 왜 서민경기는 항상 나쁠까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05 17:19

수정 2018.02.05 17:19

서민경제 위한다는 규제가 되레 그들의 삶을 힘들게 해
고부가 서비스업 규제 풀어야
[염주영 칼럼] 왜 서민경기는 항상 나쁠까

"간단하게만 얘기하세요. 지금 바빠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달 최저임금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민정 파악에 나섰다. 그런데 하필 김밥집을 찾았다. 너도나도 김밥집을 내면서 출혈 경쟁으로 몇 년째 지독한 불황 속에 빠져 있는 업종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현장 상인들로부터는 환대받지 못했다. 쌀쌀맞게 쏘아대는 김밥집 주인의 대꾸에 몇 마디 붙여보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성장률이 3.1%로 3년 만에 3%대를 회복했다.
하지만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렸을 것이다. 이 업종의 성장률은 0.7%에 그쳤다. 전체 성장률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 셈이다. 도소매.음식숙박업은 대표적 서민업종이다. 업주가 영세하고, 종업원도 낮은 임금에 시달린다. 게다가 경기마저 볕 들 날이 없다. 내 기억에도 서민경기가 좋았던 적이 언제였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경기는 사이클이기 때문에 호경기와 불경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왜 서민경기는 항상 나쁠까. 경기적 요인만으로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도소매.음식숙박업은 특이한 업종이다. 서비스산업 가운데 부가가치가 낮은 분야인데도 매년 과잉투자가 이뤄진다. 지난 10년(2006~2015년) 동안 투자가 69.2%나 급증했다. 전체 서비스업 투자증가율(13.9%)보다 5배나 높았다. 의료, 교육, 문화 등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에 투자가 몰려야 정상인데 현실은 반대였다. 돈이 높은 수익을 마다하고 낮은 수익을 찾아 움직였다는 얘기가 된다.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원인은 불합리한 규제 탓이 크다. 정부가 고부가가치 업종에는 규제장벽을 높게 쌓아 투자 길을 막아 놓고 있다. 그 결과 돈이 저부가가치 업종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명퇴 등으로 실직한 사람들이 이 분야에서 경쟁적으로 창업에 나서면서 지옥 같은 생존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그러잖아도 저부가.저임 업종인데 출혈 경쟁까지 겹치니 죽을 맛이다. 도소매.음식숙박업 경기가 항상 나쁜 것은 규제가 만들어낸 과잉경쟁의 불합리한 구조 때문이다. 그래서 서민의 삶은 늘 팍팍하다.

고부가 업종의 규제와 저부가 업종의 과잉경쟁은 국가경제 관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자원배분의 비효율성 문제다. 투자 대비 효과가 높은 업종을 규제로 묶고, 투자 대비 효과가 낮은 업종에만 투자하라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는 낭비와 비효율을 초래해 잠재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 정부 규제가 국가경제에는 저성장을 고착화하고, 서민경제에는 불경기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정부가 당초 의도했던 바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부가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 고부가 업종에 투자가 이뤄지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그쪽에서 고용을 흡수하면 저부가 업종인 도소매.음식숙박업 쪽도 과잉투자와 경쟁이 해소돼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정부는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가 대기업 특혜를 막아 서민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서민경제를 위한다는 정책이 오히려 서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부분만 보지 말고 경제 전체를 균형 있게 봐야 한다. 언제까지 잔디구장은 문 걸어 잠그고 자갈밭에서 경기를 하라고 할 건가.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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