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시장의 힘이 국력인 시대 살아가기

우리 경제가 추정치지만 작년 3%를 넘는 양호한 성장을 달성했다. 여러 가지 악재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재작년 대비 15.8%나 늘어난 덕분일 것이다. 수출은 지난 1월에도 22.2% 증가라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니 든든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이런 수출 호조 속에서도 정책 당국자나 전문가들은 모두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려의 가장 큰 이유는 팽배하고 있는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총수출액의 3%를 넘는 7위의 수출국으로 명실상부한 '산업강국'으로 올라서 있다. 그런 나라이기에 수출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통상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하고 역대 정부가 그렇게 해온 것도 사실이다. 농산물, 서비스 등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부분을 개방하면서까지 추진한 세계무역기구(WTO)의 각종 라운드 참여, 주요 교역국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이 그런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수출 호조의 결실을 누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근본적으로는 세계무역 시스템 속에서 자유무역의 이익을 중시하는 논리가 지배적이었던 점이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지금 그런 논리가 무너지고 있는 험난한 시대를 우리 산업들이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1위 수출시장인 중국은 작년 내내 그것을 지렛대로 삼아 참으로 견디기 힘든 통상압박을 가해 왔다. 또 2위 수출시장인 미국도 반덤핑, 세이프가드 등의 무역규제를 남발하는 한편 한·미 FTA 재협상이라는 칼을 들이대고 있다. 이런 미국의 신보호주의는 자국 소비자의 손실, WTO 규정 무시라는 국제적 비난 속에서도 강행되고 있다는 점이 더 걱정된다. 결국 미국, 중국 등은 시장의 크기를 국력으로 삼아 세계적으로 존중돼 왔던 국제무역질서마저 무너뜨릴 태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보호무역주의 물결 속에서 그 큰 시장들에 물건을 팔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우리나라 같은 나라들의 고심이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우리의 통상전략은 어떻게 세워야 할까. 우리나라와 가장 비슷한 처지에 놓인 두 나라의 행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산업강국들로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세계시장에 물건을 팔아야 살아가는 경제구조를 가진 독일과 일본이 그들이다.

먼저 독일은 이웃 유럽 국가들과 '경제적 동맹'을 형성해 미국, 중국과 같은 큰 나라들에 대항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유럽연합은 마치 독일산업의 안방 시장처럼 작동하고 있고, 함께 뭉친 덕분에 커진 시장의 힘으로 미국, 중국의 '무리한 보호주의'에 대항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도 이웃 국가들과의 경제통합을 추구해왔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추진이 난항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적으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우리와 비슷한 입장에 놓인 국가들과 보조를 같이하는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일본은 조금 얄미울 정도의 재빠른 행보로 통상압박을 피해가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에 가해진 통상압박 기간 동안 일본 각 지방이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은 활발했고 그 덕분에 일본 곳곳에 중국 관광객이 넘쳐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을 대상으로 펼친 아베 행정부의 통상전략은 참으로 눈부셨다고 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원하는 것이 미국에서의 투자 진작이라는 점을 십분 이해하고 정상 간의 첫 만남에서 일본 기업들의 막대한 투자를 약속하는 행보를 보임으로써 트럼프 통상압박의 1차 타깃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세이프가드, 반덤핑 등을 당하고 나서 '사후약방문' 식으로 황급히 미국 투자에 나서는 우리 기업들의 행보가 일본 기업들과는 대조적으로 보여 안타깝기 짝이 없다.

김도훈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전 산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