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yes+컬처] 올림픽도 있고 비엔날레도 있다, 강원에는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08 19:34

수정 2018.02.08 19:34

강원국제비엔날레 2018
밭을 일구려 열대우림에 불을 놓고 끊임없는 내전으로 난민이 매일 생기는… 약하다고, 다르다고 惡이 되는 세상
惡을 통해 휴머니티를 생각해보는 110여점의 작품들
한 사이 포 '검은 숲'
한 사이 포 '검은 숲'

라파엘 고메즈 바로스 '집 점령'
라파엘 고메즈 바로스 '집 점령'

블라디미르 셀례즈뇨프 '메트로폴 리스'
블라디미르 셀례즈뇨프 '메트로폴 리스'

【 강릉(강원)=박지현 기자】 악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만을 따진다면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 나쁨'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기준은 누가 세우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인류 역사 이래 꾸준이 제기돼왔다. 절대권력이 있던 시대의 악은 왕에 대한 반역이었고, 현대에서는 위법을 최소한의 경계로 본다. 집단표본에서 도덕이라는 것은 평균율에 준하고 그렇기에 변방에 있는 자들은 항상 악한 자들이 되어왔다. 나와 같으면 선하며, 다르면 악한 것. 비주류에게 악의 탈을 씌우는 주류는 선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약한 것은 악한 것, 다른 것은 악하다는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강원 강릉의 녹색도시체험센터 일대에서 내달 18일까지 진행하는 '강원국제비엔날레'는 이러한 질문을 품고 '악의 사전'이라는 아이러니한 주제를 내세운 채 대중 앞에 섰다. 세계인의 화합을 논하는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맞춰 진행되는 이 행사에서 홍경한 예술총감독은 "이 아이러니한 주제를 통해 진정한 휴머니티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과 사람 간 전쟁, 난민의 상처 담아낸 작품 눈에 띄네

이번 비엔날레에는 시리아,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모잠비크 등 내전을 겪고 있는 나라를 포함해 한국, 독일, 러시아, 멕시코, 스위스 등 23개국 58개팀이 참여해 11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변변한 미술관이 없는 강원도 일대에서 행사를 진행하다보니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의 사무공간과 어린이 체험공간 등이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원래 공간만으로는 모든 작품을 선보일 수 없어 체험센터 본관의 서쪽에 컨테이너를 활용한 인스턴트 건물을 축조해 본관은 A홀, 가설건물은 B홀로 설정했다. 홍경한 감독은 "A홀은 화이트 큐브같은 공간으로 정적이고 생각할 수 있는 사진, 회화 작품을 배치한 반면 B홀은 A홀과 대조적인 혼란스러운 블랙 큐브로 설계한 공간"이라며 "현실 속의 혼돈, 혼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투사하기 위해 30여명의 작가 팀들과 시끄럽고 무질서해보이는 작품 배치를 감행했다"고 말했다. A홀에는 고 박종필 작가의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콜롬비아의 라파엘 고메즈 바로스, 스위스의 토마스 허쉬혼, 레바논의 아크람 자타리, 미국의 왈리드 라드, 김기라, 양아치, 최찬숙, 이진주, 한효석, 김명규 등 27명의 작가 팀이 사유적인 감상을 통해 동시대의 현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전시들을 설치했다.

특히 A관의 1층에 들어서자 마자 왼편에 자리잡은 콜롬비아 작가 라파엘 고메즈 바로스의 작품 '집 점령'은 시선을 사로잡는다. 건물 내부 넓은 홀 하얀 벽에 붙어있는 500여개의 개미 조각은 두 개의 해골 형상에 자스민 나뭇가지와 천을 동여매 만든 것이다. 바로스 작가는 "콜롬비아에서 자스민 나무는 무덤가에 심어지는데 이를 통해 콜롬비아 내부의 끊임없는 내전으로 인한 피흘림과 희생 그리고 전쟁으로 발생하는 난민들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보는 개미처럼 보편적인 일임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내전으로 인해 살 곳을 잃은 디아스포라 난민 작가도 참여했다. 아프가니스탄 하자르족 출신의 호주 작가 하딤 알리도 부모가 보트 피플 출신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직물공으로 손에 꼽혔던 하자르족의 전통에 따라 카페트 위에 악마의 형상을 수놓은 그의 태피스트리 작품 '도착'은 진정한 악마가 누구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묘사되고 있는 악마의 형상이 어느날 하자르족의 형상과 비슷하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 작가는 전쟁을 피해 바다로 보트를 타고 망명을 떠났던 친구가 익사하자 죽은 친구가 아프간 집에서 사용했던 카페트를 구해와 풍랑에 침몰하는 배와 그 위에 타고 있는 악마의 형상을 수놓는 작업을 시작했다.

■인간과 자연의 전쟁, 환경문제 등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워

다소 정적인 A홀과 대조적으로 B홀은 혼돈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곳이다. 곳곳에 설치된 작품이 차디찬 정방형의 컨테이너 박스 건물 안에 자리잡았다.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고 당대 다양한 문제들을 호소하는 작품들이 배치됐다. 관람객은 고의적으로 무질서하게 배치된 작품들 사이를 이리저리 거닐며 거대하거나 혹은 없는 듯 존재하는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각각의 작품들은 환경 파괴와 난민 문제 등 현대사회 인류가 촉발시키는 거대 악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작품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싱가포르의 작가 한 사이 포의 작품 '검은 숲'은 밭을 개간하기 위해 열대우림에 불을 놓아 환경을 파괴하는 현실에 대해 고발한다. 이번 작품의 바닥에 깔린 숯 조각들은 동남아 지역에서 타버린 나무들의 조각으로 그 위에 줄기째 검게 타버린 한국 산지의 나무들이 세워졌다. 생명을 잃어버리고 까맣게 타버린 검은 숲 사이로 오솔길을 냈다. 한 사이 포 작가는 "숲 사이를 거닐며 우리가 저지르는 환경 파괴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온 블라디미르 셀례즈뇨프 작가는 자동으로 켜지고 꺼지는 공간 조명과 형광 물질을 사용해 작품 '메트로폴리스'를 B관 한쪽에 설치했다. 암전된 상황에서 작품을 보면 서울 시내의 야경이 감탄을 자아내는데 어느새 불이 켜지고 나면 남산타워와 빌딩 숲들이 모두 먹고 버린 페트병과 스티로폼, 플라스틱 도시락 더미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둡고 혼란스러운 B홀 전시장의 한가운데에도 밝은 기운이 서리는 곳이 있다.
주변의 공간에 설치된 작품들이 인간의 악함을 고발하는 작품이라면 가운데 설치된 영국 출신의 여성 작가 페트리샤 레이톤의 작품 '서클-자연에 대한 명상'은 인간성 회복과 화합, 치유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작품이다. 붉은 원형의 링 구조물에 강릉의 솔가지를 잘라 둘러 붙인 뒤 공중에 띄운 이 작품의 한 가운데는 흰 빛이 비치고 솔 냄새가 풍겨온다.
레이톤 작가는 "이곳에서 올림픽의 정신처럼 치유와 회복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며 "예술과 저연 인간 등 모든 것들이 각각의 다중성에서 단일성으로 복귀함을 상징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jhpar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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