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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명화] 세상 모든 돈을 가진 그가 부자로 사는 법, '올 더 머니'

신민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17 10:45

수정 2018.02.17 14:34

영화 '올 더 머니'는 1973년 세계적인 석유재벌 J. 폴 게티의 손자의 납치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J. 폴 게티는 몸값을 한 푼도 주지 않겠다면서도 고미술품을 사들이는 인물이다.
영화 '올 더 머니'는 1973년 세계적인 석유재벌 J. 폴 게티의 손자의 납치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J. 폴 게티는 몸값을 한 푼도 주지 않겠다면서도 고미술품을 사들이는 인물이다.

“네 시아버지에게 부탁해. 세상의 모든 돈(All the money in the world)을 가진 사람이니.” 납치범 일당이 피해 어머니에게 한 말이다. 그들이 요구한 금액은 186억원. 이렇게 터무니없는 몸값읗 부른 건 소년이 1970년대 미국의 석유재벌 J. 폴 게티의 손자기 때문이다.


지난 1일 개봉한 ‘올 더 머니’(원제 All the money in the world)는 1973년 실제 일어난 납치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몸값으로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재벌과 그로부터 거액을 뜯어내려는 일당, 아들을 구하려 발버둥치는 어머니에 대한 연출이 호평을 받았다.

영화는 존 폴 게티 3세(이하 ‘폴’)가 이태리에서 납치되며 시작된다. 회상을 통해 미국 재벌의 손자가 왜 이태리에 있는지를 설명하고 본격적으로 피 말리는 인질극이 이어진다.

작품 영상의 채도가 낮아 관객들은 1970년대 느낌을 쉽게 받는다. J. 폴 게티의 저택으로 부유층의 고풍스러움도 잘 표현했다. 개인적으로 일류 재벌의 비뚤어진 도덕심, 선민의식, 가문·혈통을 중시하는 모습을 통해 스웨덴 소설 ‘밀레니엄’에 등장하는 방예르 가문을 떠올렸다.

영화 전체를 꿰뚫는 주제는 역시 ‘돈’이다. J. 폴 게티는 협상전문가인 체이스에게 돈을 들이지 않고 손자를 구해달라면서도 거액의 고미술품을 구입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몸값을 치르겠다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세금공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돈을) 더 가져야 만족하겠느냐"는 체이스의 질문에 J. 폴 게티가 "더 많이(More)"라고 답하는 장면은 백미 중의 백미다.
"얼마나 (돈을) 더 가져야 만족하겠느냐"는 체이스의 질문에 J. 폴 게티가 "더 많이(More)"라고 답하는 장면은 백미 중의 백미다.

특히 체이스가 “얼마나 (돈을) 더 가져야 만족하겠느냐”는 질문에 “더 많이(More)”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돈에 대한 탐욕을 상징하는 백미 중의 백미다. 후반부에서 J. 폴 게티가 죽기 직전 손자 대신 고미술품을 끌어안고 “내 아이”라고 읊조리는 장면은 기분을 오묘하게 만든다.

이처럼 올 더 머니는 돈에 대한 사유를 품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납치극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주인공 모자(母子)의 절망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납치범으로부터 아들이 폭력조직에 팔렸다는 소식을 접한 어머니, 대재벌을 협박하려는 폭력조직으로 인해 귀가 잘린 폴이 그렇다.

감독 리들리 스콧은 관객들을 쥐락펴락하기 위해 여러 장면을 사용했다. ‘불탄 채 바닷가에 버려진 시체가 폴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니다’ ‘폴이 간신히 탈출하지만 폭력조직과 결탁한 경찰관에 의해 도로 붙잡힌다’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관객들이 쉽게 간파할 만한 수준이란 점이다. ‘불탄 시체가 정말 폴일까?’ ‘정말 탈출에 성공한 것일까?’가 아니라, ‘그렇게 죽진 않을 텐데’ ‘저렇게 탈출하며 끝나진 않을 텐데’에서 시작해 ‘그럼 그렇지’로 이어진다.

더구나 체이스의 역할은 미비하다. 전문가라면서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한다. 몸값이 186억원에서 43억원으로 떨어지지만 백방으로 뛰어다닌 어머니(게일 해리스)의 공이 더 커보인다. 그녀의 집에서 폴의 동생들과 놀아주는 장면에선 헛웃음이 나온다.

그럼에도 작품 완성도는 상당히 높다. 먼저 미셸 윌리엄스(게일 해리스 역), 마크 윌버그(체이스 역) 등의 연기가 탄탄하다. J. 폴 게티를 연기한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납치범 이상으로 극중 긴장감을 이끌어 나간다. 몸값을 둘러싼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갈등, 계속되는 절망과 깔끔한 마무리를 보다보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연출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납치일당의 한 명인 '칭콴타'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다. 그는 납치범이면서도 폴을 보호하는 등 입체적인 면모를 보인다.
납치일당의 한 명인 '칭콴타'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다. 그는 납치범이면서도 폴을 보호하는 등 입체적인 면모를 보인다.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는 단연 ‘칭콴타’다. 납치일당의 한 명이면서도 폴의 보호자 역할을 맡는 입체적 인물이다. 불안에 떠는 소년을 위로하고 발을 자르겠다는 폭력조직을 설득, 귀를 자르는 선으로 협박 수위를 낮춘다.

특히 칭콴타는 게일 해리스에게 “나도 폴이 살길 바라니 돈을 마련해달라”며 도리어 부탁을 한다. “돈을 구하기 위해 제국(J. 폴 게티)과 싸우고 있으니 시간을 벌어 달라”는 말에 “나는 안 그런 것 같소?”라고 반문하는 장면을 보면 되레 그가 선역으로 보이고 할아버지 J. 폴 게티가 악마로 느껴질 정도다.

이런 모습은 납치범이 인질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리마 증후군’의 단면이다. 하지만 그가 동정심을 갖게 되는 과정은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게 아쉽다.


극중에서 J. 폴 게티는 자서전 ‘부자로 사는 법’의 제목을 ‘부자가 되는 법’으로 바꾸자던 출판사를 언급한다. 그는 “부자는 바보도 될 수 있지만 부자로 사는 법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라고 말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그의 책을 굳이 읽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smw@fnnews.com 신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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