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재용.신동빈 판결 가른 '묵시적 청탁'

이진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14 14:06

수정 2018.02.14 14:06

신동빈 '면세점 특허' 70억 지원 인정돼
이재용 2심은 '승계 청탁' 아니라고 판단
국내 굴지의 그룹 총수간 희비가 엇갈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년만에 수감생활에서 석방됐으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구속된 것으로, 이들의 명운을 가른 법원 판단은 '묵시적 청탁의 존재'였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 신 회장은 1심에서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경기 의왕시에 위치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이곳은 불과 여드레 전까지 이 부회장이 머물던 곳이다.

지난 5일 이 부회장은 일부 혐의가 무죄로 인정되면서 1심 징역 5년에서 2심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돼 풀려났다.

■같은 '제3자 뇌물죄' 다른 판단은 '묵시적 청탁' 존재

신 회장과 이 부회장은 각각 K스포츠재단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에 따른 '제3자 뇌물죄'로 기소됐으나 재판부 판단이 달라 유죄와 무죄로 나눠졌다.
제3자 뇌물죄는 공무원의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이 존재 했는지가 핵심 구성요건으로, 두 사람 간에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신 회장은 2016년 3월14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단독면담에서 K스포츠재단의 경기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비 지원을 요구받고 70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뇌물을 받은 게 아니라 재단에 돈이 흘러들어간 만큼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두 사람의 단독면담 과정에서 '롯데그룹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취득'과 관련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봤다. 호텔롯데의 상장을 앞두고 회사의 캐시카우였던 면세점 사업이 특허 심사에서 탈락해 재취득이 필요한 상황이었던 점을 근거로 들었다.

롯데의 K스포츠재단 지원 시점과 청와대.기획재정부.관세청에서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특허와 관련한 사항을 검토할 때라는 시기적으로도 겹쳤다. 재판부는 "롯데의 지원이 면세점 특허와 관련된 대통령 직무집행의 대가라는 점에 관한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보기 충분하다"며 "명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지만 묵시적 청탁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 부회장의 2심 재판부는 1심에서 인정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의 묵시적 청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청탁의 전제가 되는 삼성그룹의 포괄적 현안인 '승계작업'의 존재를 부인했다. 1심과 달리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등 개별현안의 추진이 이 부회장의 계열사 지배력 확보에 도움되더라도 승계작업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승계작업에 관해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묵시적 청탁을 했다는 판단도 깨졌다. 결국 제3자 뇌물죄로 기소된 영재센터 지원 16억원에 대해서는 뇌물과 횡령 혐의 모두 무죄로 인정됐다. 이 부회장은 1심에 비해 범죄 액수가 줄어들면서 형량이 줄었다.

■삼성은 국정농단의 피해자, 롯데는 피의자?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도 재판부별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신 회장의 1심 재판부는 "신 회장의 뇌물공여 범행은 면세점을 운영하거나 면세점 특허를 취득하려는 경쟁기업은 물론, 정당한 경쟁을 통해 국가로부터 사업 인.허가를 받거나 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해 노력하는 수 많은 기업에 허탈감을 줬다"고 질타했다.
박 전 대통령의 요구가 먼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의 '공정성'을 해친 것으로 판단했다.

이 부회장의 2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을 오히려 '국정농단' 사건의 피해자로 봤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최고 정치권력자인 박 전 대통령이 국내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그룹의 경영진을 겁박했다"며 "피고인들은 승마지원이 뇌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채 뇌물을 공여했다"고 설명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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