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친절한 권력은 없다



한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던 희대의 비선실세 최순실(62)이 1심 법원의 심판을 받았다. 징역 20년에 벌금 180억원.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지 16개월 만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삼성 등 기업들이 연루된 최씨의 판결에 대한 정당성 논란도 불거졌다. 그래도 분명한 건 보수와 진보 진영을 떠나 최씨의 형량이 죄에 비해 중하지 않다는 것이 국민 법 감정인 듯하다. 되레 상급심에서는 더 엄중한 형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득세하고 있다.

법률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마도 최씨는 항소, 상고를 하더라도 1심 형 이상의 확정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짙다. 국정농단 사태의 최후 심판을 앞둔 박 전 대통령도 중형을 면키 어려운 상황이다. 헌정 역사상 미증유의 사건은 그렇게 핵심 관련자 처벌로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국정농단의 후유증은 현재진행형을 넘어 미래진행형이다. 이런 현상은 기업들 사이에서 강하게 분출되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기업들은 거의 아노미(anomia) 수준이다.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도대체 현 정권의 코드를 모르겠다고 항변한다. 룰이 없다는 것이다. 10대 그룹인 A사는 매년 수십억원을 지원하던 충남지역 축제 후원을 지난해 중단했다. 지역축제 지원이 법적·사회적으로 문제될 게 없지만 국정농단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A사 임원은 "지금은 괜찮겠지만 나중에라도 우리 회사가 그 지역에서 신규 사업을 진행할 경우 축제 지원의 대가로 엮일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지역사회에서 욕까지 먹으면서 오죽하면 이렇게 하겠느냐"고 하소연했다.

70억 지구촌을 달구는 평창동계올림픽에도 후유증이 전이됐다. 대회 개막 전까지 저조한 티켓 판매와 88올림픽, 2002월드컵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국민적 관심은 흥행실패 우려까지 들게 했다. 예전이라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티켓도 사주고, 전폭적인 붐 조성에 나섰을 텐데 너무 조용하다. 짐작하겠지만 기업들은 박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체육문화재단에 출연했다가 큰 홍역을 치렀다. 그런데 막을 올린 평창올림픽은 우려와 달리 관중석이 거의 매진 사례다. 왜일까. 사실 대부분의 대기업이 올림픽 티켓을 십시일반 구매한 사실을 국민은 모를 것이다. 다만 외부에 알리지 않았을 뿐이다.
평창올림픽 개막을 한달 앞두고 이낙연 국무총리가 그동안 외면하던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방문해 티켓 구매를 대놓고 요청한 건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전 정권과 달리 강요나 할당이 아닌 부탁과 요구의 방법론을 택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체감도는 별반 다르지 않다. 정권이 바뀌었다지만 '살아있는 권력'의 부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과연 가능하겠는가.

최갑천 산업부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