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한국판 골드만삭스, 10년간 도돌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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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행은 금융투자업이 대형화하는 기회가 될 것. 한국판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 등이 탄생할 수 있게 된다."

누가 언제 한 이야기인지는 뒤에 설명하겠지만, 금융투자업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대강 무슨 내용인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이야기도 들어보자.

"증권업계가 중개 위주 영업을 지속하고 있어 금융투자산업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을 통해 대형 투자은행을 출현시키는 게 목표다."

처음에 나온 것과 같은 맥락의 얘기다. 증권사들이 주식중개는 그만하고, 미국 투자은행(IB)들 처럼 큰물에서 놀도록 하겠다는 말이다.

내용은 같지만 저 두 발언은 무려 11년의 시차를 두고 나왔다. 첫 번째는 2005년 재정경제부가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의 목표로 설명했던 말이다. 두 번째는 2016년 금융위원회가 초대형 IB 육성방안을 내놓으면서 했던 얘기다.

골드만삭스가 참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강과 산의 형태가 변하는 데도 고작 10년이면 된다는데, 그놈의 한국형 골드만삭스는 무려 11년 동안이나 나오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2007년 증권업계 최고의 화두는 '지급결제'였다. 초대형 IB를 키우기 위해 마련된 자통법의 핵심 내용 중 하나였다. 당시 은행들은 이를 저지하려고 사생결단이었다. 은행들이 독점하며 편하게 챙기던 이체수수료 수익이 줄어들 판국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금융투자업계 이슈는 초대형 IB 육성방안이 담고 있는 단기금융업 인가였다. 증권사들이 어음을 직접 발행할 수 있게 하는것인데, 이 또한 핵심 정책이었다. 은행들은 또 반대했다. 이것도 자신들 밥그릇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투자업계에서 단기어음 발행 인가를 받은 곳은 한국투자증권 한 곳뿐이다. 미래에셋대우, KB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등은 이런저런 이유로 퇴짜를 맞거나 인가신청을 자진 철회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당국이 너무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렇다고 흠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냥 속앓이만 할 뿐이다. 얼마 전 한 지인이 등산을 권유하길래 날씨가 춥다, 무릎이 안 좋다 등등 핑계를 늘어놓으며 손사래를 쳤더니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등산에서 가장 어려운 과정은 문 앞까지 가는 것, 일단 집 밖으로 나가면 정상까지는 금방이다.
"

누가 반대하고, 무슨 논란이 있든 결국 금융당국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대자면 수백가지가 넘겠지만, 하려고 하면 해결 못할 문제는 없다. 등산을 시키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최소한 등산화부터 신겨주고 시작하자. 찬바람 걱정에 흘려보낸 세월은 지난 10년이면 충분하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증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