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힘의 논리 극복하는 통상전략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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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연두교서에서 글로벌 무역은 '공정하고 상호 호혜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해온 것이다. 이 같은 원칙 아래 미국이 그동안 타국과 맺은 양국간 또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들이 재심사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재논의되고 있고 주요 수출품들이 각종 통상공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이 앞장서 구축한 글로벌리즘을 스스로 깬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얼마 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중국 방문 전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를 했는데 '글로벌 무역시스템은 우리 모두가 규칙을 지킬 때 작동한다'는 제목에서 향후 국제무역질서 향방을 읽게 된다.

2차대전 후 '동맹'은 자유무역의 결정요인으로서 한몫 단단히 했다. 미국 프린스턴대 고와 교수의 저서 '동맹, 적 그리고 국제무역(1994)'의 핵심 내용이다. 그런데 1989년 소련의 붕괴와 냉전 종식으로 정치 요인은 퇴색하고 해외시장 확대가 무역의 지렛대로 등장했다. 중국과 동유럽국들이 새로운 플레이어로 등장했고 자유무역 무대는 크게 넓어졌다. 시장 확대로 선진국의 수출산업은 활기를 띠었다.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전 세계 생산과정이 하나의 가치사슬로 엮여지고 무역장벽도 현저히 낮아졌다.

세계무역 분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달라진다. 금융위기 이후 서구 경제가 장기간 침체되고 새로운 신흥국 등장도 없어 세계 무역은 확대되기 어려웠다. 선진국들의 산업은 위축되고 실업은 증가했다. 선진국들은 금융위기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세계 자유무역의 대차대조표를 크게 부각시켰다. 신흥국들이 지식재산권 도용 등 공정한 무역질서를 어지럽히고 일방적 무역흑자를 구가해 호혜적인 무역거래 원칙이 약화됐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성숙된 것이다. 무역을 바라보는 잣대가 해외시장 못지않게 자국 고용문제까지 감안하게 된 것이다.

해외무역을 외면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 무역의존도의 편차는 있을지언정 대외거래 없이는 새로운 소득원 창출이나 물가 안정 또는 기업 단위의 최적규모 생산량 유지도 어렵다. 양자간 무역마찰 해소를 위해서는 '법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기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와 함께 무역질서를 흔드는 배경도 살펴봐야 한다. 수출기업들이 선진국 러시를 조절하고 시장 '관리'가 필요해진 이유다. 선진국 시장 내 현지기업을 가치사슬에 참여시켜 무역규제가 '힘의 논리'에 기울지 않도록 하는 전략도 절실해졌다. 한·미 재계회의와 같은 기업인들 간 대화도 중요하다.

선진국 시장의 관리비용 증가가 필연적이라면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한다. 프라할라드 전 미시간대 교수의 저서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2006)'는 좋은 대안을 던져준다. 그는 40억 인구에 달하는 글로벌 저소득층 시장을 성장한계에 달한 선진국을 대신할 새로운 시장으로 주목하라고 했다. 단순히 시장 규모에만 매료되어 선진국 접근모델을 복사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소득이 낮아 제품가는 저렴해야 하지만 품질은 좋은 상품 모델로 승부해야 한다. 저소득층 시장에서 낮은 마진을 극복하려면 효율 극대화가 절실하다. 여기서 얻은 체질개선은 선진시장에도 활용될 수 있고,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변신할 기회도 갖게 해준다.

정순원 전 금융통화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