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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페트로 코인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22 16:57

수정 2018.02.22 16:57

베네수엘라 은행에서 달러화를 찾으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CNN기자가 현지 은행을 찾았다. 자동현금입출금기(ATM) 5대는 이미 비어 있었다. 은행 직원은 1명뿐이다. 4시간을 기다려 그가 찾은 달러화는 6센트였다. 달러화가 부족해 1인당 줄 수 있는 금액이 한정돼 있다는 얘기였다. 그가 현지 커피숍에서 마신 카푸치노는 3만5000볼리바르. 6센트(1만볼리바르)의 3.5배였다.


석유매장량 1위인 베네수엘라는 한때 남미 최대 부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미의 병자'가 됐다. 지난해 물가는 2000% 넘게 올랐다. 기름값이 폭락한 데다 정권마다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한 탓이다. 매년 정부 지출의 70% 이상을 무상복지로 퍼줬다. 작년에만 총 1500억달러(약 167조원)의 빚을 졌다. 볼리바르화는 가치를 상실한 지 오래다. 그나마 암시장에서 달러 위조용으로 헐값에 대량 유통된다. 달러 반입은 사실상 차단됐다. 미국이 현 니콜라스 마두로 독재정권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미국 기업이나 개인은 베네수엘라와의 거래가 금지됐다.

위기를 벗어날 해법은 없을까. 베네수엘라는 가상화폐에 승부를 걸었다. 마두로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가상화폐 '페트로'를 발행해 첫날에만 7억3500만달러(약 7914억원)어치 사전주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1페트로의 가격은 60달러. 발행 이후엔 원유 1배럴 가격과 연동된다. 석유로 보증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국가가 가상화폐를 발행한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성공 가능성은 반반이다. 통화가치가 떨어진 상태에서 가상화폐가 오히려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금융전문지 배런스는 "화폐가치가 떨어진 베네수엘라나 짐바브웨에선 가상화폐가 생명줄"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매장된 석유를 시추할 능력이 얼마나 있는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석유생산량은 3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가상화폐를 통화로 인정할지 여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하지만 코닥, 텔레그램 등 알만한 기업들이 자체 가상화폐를 발행해 투자자금을 끌어모았다. 베네수엘라의 가상화폐 발행 실험은 어쩌면 금융자본을 발달시키는 한 축이 될 수도 있겠다.
한국 정부도 눈여겨볼 일이다.

ksh@fnnews.com 김성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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