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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中 시내버스에서 발견한 '수요 공급의 법칙'

김경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23 14:48

수정 2018.02.23 15:25

젊은 시절 중국 산둥성 연태시에서 꽤 오래 거주한 적이 있다. 중국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 당시 시내버스는 내 발이 되준 좋은 친구였다.

이후 국내로 돌아와 경제신문사에서 자본시장을 취재했다. 자본시장을 관찰하고 있을 때 문득 중국 유학시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누구나 아는 원론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모든 상품과 서비스는 결국 수요와 공급 추이에 따라서 가격이 변동된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이다. 단순하지만 견고한 이 사실은 경제 흐름에 조금 더 익숙해진 뒤에야 비로서 나에게 명백해졌다.

중국에 거주할 땐 몰랐던 중국 시내버스 수급 법칙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중국 시내버스 요금이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출퇴근 붐빌때는 물론이거니와 평소에도 기본 수입을 충족할 수 있는 절대 수요층(승객)이 기반이 됐기 때문이었다. 도시 주민별 소득차이, 생활수준 그것은 둘째 문제였다.

결국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이 많으면 버스회사가 낮은 요금에도 수지를 맞출 수가 있었다. 버스회사는 요금 인상에 나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박리다매, 마진율은 낮아도 절대 수익을 늘리는 식으로 버스회사는 지속 운영할 수 있다. 중국인구 14억명, 그 거대한 수요층을 고려하니 (예전 같으면 과연 수익이 날까 했겠지만) 이제는 싼 버스요금이 당연하게 와닿는다.

/사진=바이두사진
/사진=바이두사진


중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돈이 없다 보니 택시(물론 한국보다 저렴해도)를 타는 것은 사치였다.

넓디 넓은 땅덩어리를 자랑하는 중국서 기자의 발 노릇을 했던 것은 시내버스였다. 약 700만명이 거주하는 중소도시(?) 연태였지만 도시 중심가로 가는데 한시간, 근처를 갈때도 20~30분은 예사였다. 걸어가기엔 다소 멀었던 그 장거리 이동을 시내버스가 늘 함께한 것이다.

내가 거주했던 당시만 해도 시내버스 요금은 1~3위안(정거장 단위로 추가지불)으로 책정됐다. 원화로 환산하면 170~500원 수준으로 장거리 이동을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이분의 일에도 미치지 않았다. 물론 여름엔 에어컨을 겨울엔 히터를 틀어주지 않았다. 승객이 상대적으로 많은 점 등은 싼 요금으로 감수해야 하는 문제가 되곤 했다.

중국 거주 당시 다른 지역으로 가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베이징, 상하이, 난징, 웨이하이 등 몇군데 도시에서 경험했던 시내버스 탑승기도 연태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수 승객으로 기본 수익을 맞출 수 있는 이유 때문인지 대도시에다 소득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데도 버스비 격차는 크지 않았다.

여기서 의문이 들었다. 중국이라는 한 국가에 속했지만 각 도시별로 인구와 경제규모, 그리고 산업구조 등 다양한 부문에서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버스 요금을 책정할 때 지역별 특성을 감안해 버스비가 2~3배 차이나야 정상 아닌가라는 의구심 말이다.

중국은 공산주의를 주창하지만 '중국특색 사회주의'라는 변질된 자본주의가 사회 전반에 만연한 국가다.

한 예로 중국에선 대도시 주택가격이 지난 2016년 천정부지로 오르자 당국이 규제책을 강화해 집값 잡기에 나섰다. 이에 반해 중소도시에선 주택 수요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재고주택이 좀처럼 줄지 않았고 집값은 낮은 수준에서 횡보세를 보인 바 있다. 중국이 제 아무리 사회주의 국가임을 강조하더라도 부동산 시장은 수급에 따른 시장 원리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중국내 대도시와 중소도시 버스요금 차이가 왜 크지 않은지 따져보자. 자본주의 도입으로 경제성장이란 열매를 맺었지만 급속한 경제 성장 추진으로 나타난 빈부격차 극대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중국정부가 개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정부분 버스요금 지원 혹은 요금 통제를 하는 식으로 버스요금을 낮은 수준에서 관리하는 것이다.

중국은 빈부격차를 확인할 수 있는 지니계수가 굉장히 높은 수준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은 2003~2013년까지 0.47을 상회했다. 지니계수가 일반적으로 0.4를 상회하면 소득분배가 상당히 불평등한 것으로 시장에선 평가된다.

경험상 중국은 분명히 도농간, 빈부간, 남녀간 소득 차이가 극심해 앞으로 사회문제로 대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사진=중국국가통계국
/사진=중국국가통계국


중국 시내버스 요금이 싼 이유, 기자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중국인들 소득 수준이 높아지긴 했어도 저축, 대출금 상환 등을 제한 가처분 소득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제한된 소득 탓에 중국인은 아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아끼려고 대중교통을 적극 이용한다.

시내버스로 승객이 떼거리로 몰려들면서 기본 수요가 받쳐주니 버스회사는 박리다매 식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중국정부는 지방, 중앙정부 차원의 복지 차원에서 대중교통 가격을 통제하는데 일정 부분 정책으로 개입하게 된다. 버스회사는 시장원리에 따라서 버스요금을 올리고 싶지만 당국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중국 버스비가 낮았던 이유는 수요와 공급 원리의 영향, 그리고 정부의 개입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내버스 요금이 많아도 500원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은 결국 '다수 승객'이란 확고한 수요층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 연태시 시내버스 안에서 많은 승객이 얽히고 설킨채 진동했던 암내의 추억이 아직도 선하다.
다시는 안탈 것이라 다짐했지만 이내 버스에 몸을 실었던 그때가 이젠 추억이 됐다.

당시엔 싫었던 기억이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다가온다.
발디딜 틈 없이 붐볐던 버스안 정경도 그립다.

kmkim@fnnews.com 김경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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