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각자의 프레임을 깨고 나와야

32세의 나이에 교수가 됐을 때 위로 띠동갑 선배 교수들이 계셨다. 그분들은 열심히 일한다고 하셨지만 내가 보기에는 고리타분했다. 차라리 저러지 말고 가만히 계시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때가 많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학생들과 교수들이 원하는 대학의 모습이라는 믿음으로 동분서주하던 어느 날, 그 선배 교수님들이 회갑을 맞았다는 얘기에 순간 '내가 부임할 때 이 선배들이 지금의 내 나이였지'라는 생각이 들며 뜨끔함을 느꼈다.

나는 다를 거라고 자위했지만 띠를 한 바퀴를 더 돌고나서 보니 나도 그리 보였을 것이 틀림없다. 내가 어른이 돼서야 경험한 것들을 대학 입학 전에 다 체험하는 지금의 학생들과 교수들이 원하는 대학의 모습을, 비록 열심히 적응해왔다고는 하지만 30년 전 만들어놓은 내 프레임 속에 담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치집단을 보면 나와 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87년 군사정권을 종식시킨 후 민주화 과정, 진보적 개혁 과정, 보수적 경제팽창우선 과정을 거치면서 소위 보수로 불리는 그룹은 1970~1980년대의 경제발전 프레임을, 진보로 불리는 그룹은 민주화 이전 독재와 기득권층에 대응하던 약자 보호라는 도덕적 우월성 프레임을 만들고 그 프레임을 더욱 견고히 하는 데 몰두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여기에 북한에 대해서는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압도'라는 프레임과 '우리끼리 뜨거운 가슴으로'라는 프레임에 갇히면서 자기끼리의 탈법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며 다른 프레임은 아예 무시해버린다. 지난 30년간 그랬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양 프레임이 서로 위한다는 많은 국민은, 특별히 미래세대의 상당수는 두 프레임의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도 진보도 경제팽창 우선도, 군사적 옵션도 우리 민족끼리도 좀 생뚱맞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지금까지 이만큼 성장한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개인적 가치를 더 견고히 인정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원하며,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도 그 협박에 굴복하는 것은 참을 수 없으며, 무리한 통일보다도 그 전에 평화와 자유, 공정한 민주사회가 만들어지기를 원한다. 이런 눈높이를 못 맞추는 정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촛불로 교체해버리는 성숙한 자기 표현에 능한 국민들이다.

이렇게 부쩍 성장한 시민의식을 가진 국민을 이끌어야 하는 정치집단은 각자의 프레임에 갇혀서 나라 전체를 극한 대립의 장으로 만들고, 이제는 국론 분열을 넘어 내부 분단상태를 만들어놓고 있다.
두 프레임이 만들어진 시대적·역사적 배경과 이유가 있으며 그때에 그 상황에서 분명한 역할과 공헌이 있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시효는 벌써 끝났다. 이제 그 프레임의 영역을 이 시대의 국민을 품도록 넓히든지, 차라리 그 벽을 허물고 밖으로 나오시라. 그리고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했기에 우리가 앞설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이후의 미래사회를 담을 수 있는 정치적·제도적 새 프레임을 만들어 주시라.

국민은 감동적인 정치극을 즐길 권리가 있다.

한헌수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전 숭실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