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미투 운동, 곁길로 흘러선 안된다

지령 5000호 이벤트

권력형 '성갑질'이 문제 본질.. 진영논리는 피해자 용기 꺾어
제도적 방지책 입법이 급선무

성추문에 휩싸인 연극인 이윤택의 사과 회견을 보고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생각났다. "더러운 욕망을 억제하지 못했다"는 변명이 잊었던 기억을 불러냈다. 인간 내면에 깃들인 추악한 성적 욕망을 그려낸, 비비언 리와 말런 브랜도 등 두 명우의 연기는 다시 봐도 일품이다.

하지만 욕망이 만악의 근원일까. 들불처럼 타오르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진 않아 보인다. 욕망 자체보다 집단 내 권력을 악용한 '갑질'이 문제의 핵심이어서다. 캐스팅을 좌지우지한 이윤택이나, 최영미 시인이 시 '괴물'에서 원로시인 'En선생'으로 지목한 고은이 그 범주다.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오늘'과 '내일'을 틀어쥔 이들의 못된 손버릇에 저항하는 게 어디 쉬웠겠나.

테네시 윌리엄스가 원작 희곡에서 그렸듯이 인간은 누구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타고 있을 법하다. 철학자 칸트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에 비견한 도덕률(양심)로 욕망을 억제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알량한 권력을 쥐어 절제심이 무뎌지면 왕왕 괴물은 탄생한다. 500년 전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이런 '유감스러운 약점'을 꿰뚫어 봤다. "처음엔 자기 몸을 지키는 일만 생각하던 사람도 그것이 이뤄지면 남을 공격하는 일을 생각하게 된다"면서.

노자에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라는 말이 있다. '하늘의 그물은 넓어 성긴 것 같지만 빠뜨리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미투 바람이 확산되면서 조직 내 권력을 악용한 성적 적폐가 수면으로 드러나고 있는 건 다행이다. 대학에서 제자들을 상습 성폭행했다는 배우들과 인간문화재, 시사만화가 등 문화계 거물들의 추문이 잇달아 터졌다. 심지어 해외 봉사활동 중 여성 신도를 성폭행하려던 정의구현사제단의 한 신부도 여론의 심판대에 올랐다.

물론 이런 권력형 성폭력은 개인적 성추문보다 더 엄정히 다뤄야 한다. 그래서 요즘 세태가 걱정스럽다. 혹여 일부 언론에서 관음증을 부풀리면서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서다. 그러는 사이 'En선생'류의 가해자들은 '잠수' 타고 있다. 양은냄비처럼 끓다 쉬이 식는 우리 사회의 속성을 간파한 듯이.

고질처럼 도진, 정치권의 진영논리에 따른 질 낮은 공방은 더 볼썽사납다. 과거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 내 성추문이 불거졌을 때 '성누리당'으로 공격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이번에 당 소속 의원 보좌관의 평창 성추태 등을 눙치려다 '더듬어민주당'이란 역공을 받은 게 그 사례다. 그나마 군소 야당들이 '갑질 성폭력 방지법'을 만든다며 뒷북이라도 치고 있으니 반가울 정도다.

최근 미투 운동으로 추락 중인 이들 중 친여 혹은 진보 인사들이 많이 눈에 띄긴 한다. 하지만 공교로울 뿐이다.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가 여야나 좌우를 가려 태울 리는 만무하다. 미국에서 발원한 미투 운동이 우리의 경우 생래적으로 보수적 집단인 검찰 안에서 먼저 불붙지 않았나. 한 시사평론가처럼 미투 운동에 제 발 저린 듯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언'할 이유도 없다.


가해자가 내 편이라서 정치권이 '내로남불'식 진영논리로 어렵게 용기를 내려는 피해자의 입을 막아선 곤란하다. 이념이 아니라 권력형 '성 갑질'이 문제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집단 내부의 민주적 견제.감시 시스템을 입법으로 제도화하는 일이 급선무다.

kby777@naver.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