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한국GM 노조, 머리띠를 풀어라

지령 5000호 이벤트

2009년 본사 사례서 배우길.. 위기 닥치자 파업유예 선언

한국GM 노조가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섰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지난달 28일 빗속에서 "군산공장 폐쇄철회" "구조조정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일자리가 걸렸을 때 노조가 양보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회사가 백척간두에 섰다면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모두가 패자가 되는 길만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 재무제표는 엉망이다. 지난해 약 9000억원 적자를 냈다. 2014년부터 4년 누적적자가 3조원에 이른다. 부채비율은 최근 몇년간 수백%를 오르내리더니 2016년엔 무려 8만%를 넘어섰다. 당연히 자본잠식에 빠졌다. 이런 회사에서 노조원들은 꽤 높은 연봉을 받는다. 이건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다.

회사가 다 잘했다는 게 아니다. 경영진도 문제투성이다. 미국 GM 본사는 한국 공장에서 잘 만들던 브랜드를 없애더니 철수설을 흘렸다. 군산공장 폐쇄도 불쑥 꺼냈다. 본사에서 온 간부는 국회에서 정치인을 만나느라 바쁜 일정을 보냈다. 세금을 지원해 달라면서 되레 일자리와 물량배정을 카드로 '갑' 행세를 한다. 한참 잘못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조에 양보를 당부한다. 글로벌 기업 GM은 한국 사업을 접고 떠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조원들에게 돌아간다. 지난 2009년 GM 본사 사례를 참고로 삼을 만하다. 당시 GM은 고유가와 금융위기로 휘청거렸다. 그러자 GM 노조가 속한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의료지원.연금을 비롯한 복지 혜택을 대폭 줄이고 2015년까지 파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GM은 뉴욕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파산법 챕터 11)했고 오바마 행정부는 자금을 지원했다. 이를 바탕으로 GM은 빠른 속도로 재기에 성공했다. UAW는 파업유예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1935년 설립된 UAW는 미 노동계를 대표하는 강성 노조다. 과거 그 우산 아래서 GM 노조원들은 넉넉한 삶을 즐겼다. 하지만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UAW는 기꺼이 현실적인 노선을 택했다. 복지.임금을 챙기기보다 미 자동차산업 자체를 살리는 게 급선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학철부어란 고사성어가 있다. 수레바퀴 자국에 물이 고여 있다. 그 안에서 붕어가 팔딱거린다. 이 붕어에겐 당장 한 바가지 물이 급하다. 멀리 떨어진 강까지 다녀올 여유가 없다. 금속노조는 집회에서 "한국GM을 나락으로 빠뜨린 원인을 밝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불이 나면 일단 끄는 게 급하다. 원인을 따지는 건 나중이다. 한국GM 노조가 머리띠를 풀고 당장 회사를 살리는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