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테헤란로

[여의도에서] 주총 분산정책, 미봉책에 그치지 않으려면

강재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02 17:37

수정 2018.03.02 17:37

[여의도에서] 주총 분산정책, 미봉책에 그치지 않으려면


"상장사가 나쁜 것을 감추기 위해 주주총회를 마치 일부러 한날한시에 작정하고 개최하고 있다는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다른 날 개최하려고 해도 현 시스템에선 사실상 불가능한데 말이다."

코스닥 상장사 임원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빠르게 뱉어낸 말이다. 이 임원의 주장은 이렇다. 정부가 주총 분산을 유도하고 있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제도로 인해 상장사만 투자자에게 신뢰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올해 정부는 '주총 분산 자율준수 프로그램'을 가동하며 주총 분산 개최를 유도하고 있다.
이는 이른바 '슈퍼주총데이'를 막아내기 위함이다. 취지는 좋다. 아울러 주총을 분산해 지난해 말 종료된 '섀도보팅' 제도 폐지로 인해 정족수 부족을 만회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크다.

주주들의 주총 참여가 '슈퍼 주총데이'에 막혀 어렵다는 지적에 해결책을 내놓은 것. 그러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주총을 분산해야 하다는 판단은 맞다. 하지만 그 방법에는 문제가 있어서다. 우선 올해 상장사가 주총 집중 예상일을 피하지 못할 경우 '주총 분산 자율준수 프로그램 미참여'라는 공시를 사유와 함께 발표해야 한다. 투자자들의 신뢰를 받아야 할 상장사가 '주총 분산 자율준수 프로그램'에 '미참여' 했다는 '낙인'이 찍혀 버리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참여하지 못한 상장사 주식담당자는 "한 주주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회사가 뭐 구린 것이 많아 주주들이 주총에 참여하지 못하게 집중된 날에 개최하느냐는 질책을 받았다"고 하소연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주총 집중 예상일을 피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코스닥 상장사다. 이는 3월까지 주주총회를 열어야만 하는 데 기인한다. 이로 인해 재무제표를 정기주총 6주 전까지 마무리 해야 하지만 회계인력 부족과 대기업을 우선적으로 감사하는 감사인의 특성상 코스닥 상장사는 집중일을 피할 도리가 없다. 집중일을 피하려면 코스닥 상장사는 1월에 재무제표 작성을 완료했어야 했다. 그러나 회계인력이 부족한 코스닥 상장사엔 불가능에 가깝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굳이 '자율준수 프로그램 미참여' 공시를 실시했어야 하는 부분이다. 이유인즉, 주총 개최일은 지난 2월 중순(올해 지난 2월 14일)을 기준으로 상장사별로 이미 정해져 버렸다. 그러나 이를 2월 말에 굳이 '미참여' 공시하도록 함으로써 상장사들은 투자자에게 신뢰를 두 번 저버리게 할 필요성이 있었느냐다.

사실 '자율준수 프로그램' 미참여 공시는 불필요한 것이다.
상장사와 투자자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본시장에선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다.
주총 분산을 위해 결산 시기를 나누는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kjw@fnnews.com 강재웅 증권부 차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