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로]

궁부일체론

지령 5000호 이벤트

위대한 개혁 군주인 정조는 국가의 재산을 백성을 위한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조 이전까지만 해도 국왕들은 왕실 재산을 사유화하고, 백성들의 돈을 빼앗아 내탕금(왕실돈)으로 사용한 경우가 허다했다. 고종은 내탕전으로 정부에 고리대로 돈을 빌려주고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둬 예산이 확보되면 그때 돌려받기도 했다.

국정원 특활비로 전 정권 인사들이 줄줄이 감옥에 가고 수사를 받는 상황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이유다. 나라의 재산을 자신의 쌈짓돈으로 여기는 권력자들의 인생 말로는 비참했다. "정권을 잡은 게 아니라 이권을 잡았다"라는 어느 정치인의 말처럼 역대 정권들의 도덕성은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정조가 주창했던 '궁부일체론(宮府一體論)'은 지금도 권력자들이 명심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왕실인 '궁'과 각 부서인 '부'가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조는 즉위 후부터 궁부일체론을 실시했다. 왕실 재산도 국가의 재산이기 때문에 백성을 위한 국가의 운영비용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정조는 실제 즉위 기간 내내 내탕금을 공적 자금으로 활용하고, 특히 친인척들이 불법으로 백성들 돈을 빼앗으면 이들의 재산을 호조에 편입시키고 반드시 재산을 찾아 돌려줬다.

정조가 이처럼 국가 재정을 투명화한 것은 자신이 추진하는 개혁정치를 제도화하고 시스템화하려는 의도였다. 무엇보다 국가 재정의 낭비가 없어야 하고, 백성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공적 책임의식의 발로다. 정규 행정기구와 밀착시켜 자의성의 소지를 줄이는 한편 공공부문에 대한 지출을 늘려 공적 재원으로서 위상을 강화하는 것이 첫번째 목표였다.

권력투쟁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상대방을 제입하기보다는 설득과 과감한 개혁정책 추진으로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보여주려 한 점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혁을 추진할 때는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소외된 사람에게는 따뜻한 손을 내밀고 동참시키려는 의지가 무엇보다 강했다. 노론과 남인 소론으로 갈라졌던 당시 조선 권력투쟁 지형에서 왕권을 강화하고 위민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조의 머리는 복잡했다. 자신을 죽이려는 노론 벽파 출신들도 과감히 조정에 등용시켜 견제와 균형의 추를 맞추려 노력한 것도 그래서다.

정조가 '장용영'이라는 군제개혁 카드를 꺼내든 것은 다목적 포석을 위한 장치다. 장용영은 왕을 호위하는 군대로 왕실과 도성 한양을 방어하고자 설립됐다.
군 역할은 실종된 채 재정만 축내는 낡은 군사체제를 개편해 국방을 강화하고 내실을 기하기 위함이었다.

아쉽게도 정순대비를 비롯한 낡은 훈구세력들이 결국 정조를 시해하고 장용영을 해산시키면서 역사의 시계는 찡그리며 과거로 돌아갔다. 그러나 정조가 정적들에게 주로 사용했던, 즉 공적인 거래, 최후통첩, 은밀한 당근으로 구성된 '정치칵테일' 전략은 지금도 유효한 정치기술로 교훈을 삼을 만하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