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재건축 안전기준 시행, 밀어붙일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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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의견 무시하고 강행..'소통정부' 온데간데 없어

깐깐해진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이 5일부터 시행됐다. 국토교통부는 새 기준을 지난달 21일부터 열흘간 행정예고했다. 예고는 3월 2일 끝났다. 열흘간 1000건 넘는 주민 의견이 접수됐다. 국토부는 지난 주말(3~4일)에 후다닥 의견 검토를 마쳤다. 이를 바탕으로 기준을 약간 손질했지만 큰 틀은 그대로 뒀다. 아파트 재건축을 준비하던 주민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당최 정부가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오래된 아파트를 재건축하려면 안전진단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국토부는 이때 적용하는 구조안전성 비중을 20%에서 50%로 올렸다. 그 대신 주거환경 비중은 40%에서 15%로 내렸다. 안전에 딱히 문제가 없는 한 재건축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정책 방향 자체는 긍정적이다. 국토부는 '정상화'라는 용어를 썼다. 왜 정상화라고 했을까.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은 지난 2003년 노무현정부가 만들었다. 그 전엔 지자체별로 중구난방이었다. 기준은 무분별한 재건축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 최초 구조안전성 비중은 45%, 주거환경 비중은 10%였다. 이걸 이명박정부가 조금 누그러뜨렸고, 박근혜정부는 2015년 9.1대책에서 구조안전성 비중을 20%, 주거환경 비중을 40%로 뒤바꿨다. 문재인정부는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을 계승했다. 따라서 현 정부의 눈엔 구조안전성 비중 50%가 정상이다.

문제는 선량한 피해자들이다. 주민들은 부동산 냉.온탕 정책의 희생양이 됐다. 안전진단은 재건축으로 가는 관문이다. 이처럼 중요한 정책이 불과 2년반 만에 뒤집혔다. 행정예고는 열흘밖에 안 했다. 그 흔한 청문회도 한번 안했다. 소통을 중시하는 정부가 맞나 싶다. 구조안전성 가중치를 20%→30%, 30%→40%, 40%→50% 식으로 단계적으로 높일 순 없었나. 시행일자도 최소한 몇 달 말미를 주는 게 정책 수요자에 대한 예의다.

다시 말하지만 안전기준 강화는 나름 설득력이 있다. 자원낭비를 줄이고, 재건축으로 큰돈을 벌려는 일부 투기꾼들을 응징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정책방향이 옳아도 성난 대다수 주민들이 궐기대회를 열어 정부를 성토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서울 양천구 목동아파트 주민들은 '아마추어 주택정책, 김현미 장관은 사퇴하라' '국민의 재산권, 생활권 침해하는 정부는 각성하라'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박근혜정부가 재건축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삼은 것은 잘못이다.
마찬가지로 문재인정부가 재건축을 투기 근절수단으로 삼는 것 역시 잘못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애꿎은 주민들만 힘들다. 안전진단 기준이 정권 따라 춤을 춘다. 이래서야 다음 정권에서 기준이 바뀌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