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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자본에 의한 통제, 정당화 될까

조윤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07 17:44

수정 2018.03.07 17:44

부채통치 마우리치오 랏자라또/갈무리
[책을 읽읍시다]자본에 의한 통제, 정당화 될까

현재를 살아가는 성인들 중 단 한 푼의 부채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까. 20살, 대학의 문을 열면서 시작되는 부채의 길은 어쩌면 죽을 때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는 '인생의 동반자'인지도 모르겠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를 잇는 이 책은 부채론 2부작의 완결판으로 부채에 대한 비판적 철학이 담겼다. 중세와 근대, 그리고 현대로 들어서며 부채의 개념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왜 부채가 죄악으로 인식되었는지 등을 깊게 파고든다.

이탈리아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저자는 부채가 현대 자본주의의 기본적 이론 체계가 되어 통치 원리로 기능한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설득력 있게 서술한다.

중세의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났지만 '어리석게도' 죄를 짓는다. 죄를 지었으니 갚아야 하고, 그것이 바로 벌이다.
하나님이 없는 근대의 인간은 '악하게도' 죄를 짓는다. 모두가 다 같이 잘 살고자 만들어놓은 사회의 규칙을 어떤 개인이 어기는 죄를 범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기만 잘 살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으려는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니 악한 것이다. 따라서 악한 인간은 공공의 적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짓는 죄는 '부채'고, 이를 갚아야 할 대상은 은행이다. 그러니 부채를 가진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이자, 악한 인간이고, 그 무엇보다 '한심한' 인간이 됐다.

우리사회에서 '빚(부채)를 진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러하다. 우리는 부채가 공적 재정을 파탄시키고, 성장을 저해하며, 대량 실업을 야기한다는 정치인과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거의 매일같이 듣고 있다. 시장을 살리고 번영을 누리고 싶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저자의 진단은 다르다. 자본주의 체제하의 부채는 결코 경제적.재정적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예속과 종속으로 귀결되는 하나의 정치적 관계다. 부채는 무한한 것, 상환 불가능한 것, 결국 조절 불가능한 것이 되어 사람들을 길들이고 구조개혁을 강요하며 권위주의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도구, 즉 자본의 이익을 따르는 '기술적 통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도구라고 본다.

2008년의 글로벌 경제 위기는 조세를 통해 사회적 부의 몰수를 조직적으로 이뤄지도록 했다.
저자는 마치 경제 붕괴를 우려하는 현재, 지금까지 상대적 자율성을 누리던 영역까지 금융 자본에 의해 통제되는 상황을 크게 우려한다. 그렇기에 이같은 자본주의적 가치화 그 자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부채가 당연하거나 또는 부끄럽게 느껴진다면, 이 책으로 또다른 대안을 고민해 볼 수도 있을 듯하다.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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