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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우의 두 영화] '저널리즘'을 말한다...더 포스트 vs. 스포트라이트

신민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10 11:02

수정 2018.03.10 11:20

더 포스트와 스포트라이트는 모두 세계를 뒤바꾼 '위대한 폭로'를 조명하며 저널리즘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 포스트와 스포트라이트는 모두 세계를 뒤바꾼 '위대한 폭로'를 조명하며 저널리즘에 대해 이야기한다.
1971년 워싱턴 D.C. 지금이야 미국의 유력지로 잘 알려진 ‘워싱턴 포스트’도 중소 지역지에 불과하던 시대다. 사주(社主)인 캐서린 그레이엄(이하 캐서린)은 주식공개와 투자유치를 통해 회사의 성장을 꿈꾸고 있다.

이때 뉴욕 타임즈가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다. 네 명의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할 것을 알고도 파병을 멈추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이하 벤)도 같은 자료를 획득, 후속보도를 준비한다.

약 30년 후, 2001년 ‘보스턴 글로브’는 집요한 취재 끝에 카톨릭 보스턴 교구 신부들이 저지른 아동 성추행 사건을 폭로한다. 이 언론사 역시 미국에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

각각 특종보도를 다룬 <더 포스트>와 <스포트라이트>는 상당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전자는 미국 정부라는 거대 권력, 후자는 도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종교계의 압박 속에서 숨겨진 진실을 파헤친다.

<스포트라이트>에서 등장한 벤 브래들리 주니어가 <더 포스트> 벤 브래들리의 아들이란 점은 의도치 않게 두 영화에 유기성을 준다.

각각 특종보도를 다룬 <더 포스트>와 <스포트라이트>는 상당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전자는 미국 정부라는 거대 권력, 후자는 도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가톨릭 교구의 압박 속에서 추악한 진실을 파헤친다.
각각 특종보도를 다룬 <더 포스트> 와 <스포트라이트> 는 상당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전자는 미국 정부라는 거대 권력, 후자는 도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가톨릭 교구의 압박 속에서 추악한 진실을 파헤친다.
각 작품을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토마스 맥카시는 기자들이 취재원을 만나거나 자료를 구해 기사화하는 등 취재 과정만으로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영화적 장치 없이도 관객을 스크린 속으로 집어삼킨다. 명배우들의 호연이 있기에 가능한 연출이다.

<스포트라이트>에서 마이클 키튼, 마크 러팔로, 레이첼 맥아담스 등이 정의감에 불타는 기자를 연기했다면 <더 포스트>에선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라는 대 배우가 등장한다.

<더 포스트> 초반 식당에서 캐서린과 벤이 기사 논조를 두고 가볍게 언쟁하는 장면은 분명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기력 대결’이란 시각에서 주의 깊게 감상해볼 만하다.

‘세상을 뒤흔든 특종보도’란 줄기는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판이하게 다른 소재를 다룬다. 가장 먼저 보도의 시점이다. <스포트라이트>가 최초보도를 다루는 반면 <더 포스트>는 뉴욕 타임즈가 이미 폭로한 사안과 관련, 워싱턴 포스트의 후속보도를 그린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왜 <더 포스트>에서 워싱턴 포스트에 주목했을까. 간단하다. 더 극적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왜 <더 포스트> 에서 워싱턴 포스트에 주목했을까. 간단하다. 더 극적이다.
일반적인 언론 영화라면 최초보도 과정을 중심으로 그에 따른 사회적 파장을 다루는 게 일반적이다. 이에 대한 교과서격인 작품이 바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다.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최초 보도한 기자들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스티븐 스필버그는 왜 <더 포스트>에서 워싱턴 포스트에 주목했을까. 간단하다. 더 극적이다. 성 차별이 극심한 시기에 사주가 된 여성. 영세한 언론사가 회사의 존망을 걸고 진실을 폭로하려는 결심은 관객들에게 더 큰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저널리즘만 외치지 않는다. 핵심은 ‘보도 경쟁’이다. 뉴욕 타임즈가 펜타곤 페이퍼로 1면을 장식할 때 벤은 닉슨 대통령 딸의 결혼식이 실린 신문을 내던지며 “우린 이런거나 실었다”며 분개한다.

뉴욕 타임즈가 정부와 법적 분쟁을 겪는다는 소식에 “저 소동에 낄 수만 있으면 간, 쓸개 모두 바치겠다”는 벤의 혼잣말은 영화를 꿰뚫는 명대사다. 네 명의 탐사보도 기자가 진실과 정의를 향해 달려가는 <스포트라이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저 소동에 낄 수만 있으면 간, 쓸개 모두 바치겠다”는 벤의 혼잣말은 영화를 꿰뚫는 명대사다. 네 명의 탐사보도 기자가 진실과 정의를 향해 달려가는 <스포트라이트>와는 다른 모습이다.
“저 소동에 낄 수만 있으면 간, 쓸개 모두 바치겠다”는 벤의 혼잣말은 영화를 꿰뚫는 명대사다. 네 명의 탐사보도 기자가 진실과 정의를 향해 달려가는 <스포트라이트> 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들이 저널리즘을 외치는 동안 <더 포스트>에선 언론사도 결국 기업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는 주식공개와 함께 투자를 유치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하는 순간 정부와 분쟁으로 폐간을 할 수도 있는 상황. 회사를 위해 보도하지 말자는 이사진들과 사회 정의를 주장하는 벤 사이에서 캐서린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그 역시 언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지만 수많은 직원을 생각하면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렇기에 <더 포스트>는 인물들의 성장 과정을 담았다. <스포트라이트> 속 기자들은 모두 저널리즘으로 무장한 완성형 인물이다. 반면 캐서린은 미숙한 경영인이자 언론인이다. 남편이 자살하면서 의도치 않게 사주 자리에 앉았고, 남성 이사진으로부터 “사교계에선 유능하지만 경영으론 아니다“라는 평가마저 받는다.

캐서린은 고뇌 끝에 이사진을 향해 “워싱턴 포스트는 내 아버지도, 내 남편도 아닌 나의 회사”라고 일갈하며 진정한 경영인으로 성장한다. 나아가 미국을 바꾼 언론인으로도 평가받게 된다.

벤 역시 마찬가지. 그는 편집국장으로서 자부심이 넘치고 오만하다. 기사 논조에 대해 의견을 내는 상사에게 “그건 내 영역”이라며 입을 닫게 만든다. 하지만 잃을 게 많은 캐서린이 이 보도를 위해 얼마나 용감한 결정을 내렸는지 깨달은 뒤 진정한 동료로 거듭난다.

<스포트라이트> 속 탐사보도팀장 윌터 로빈슨은 “몇 년 전 같은 제보를 받았지만 크게 다루지 않고 덮었다”고 고백한다. 피해자들의 절규에 똑같이 침묵한 언론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묻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 속 탐사보도팀장 윌터 로빈슨은 “몇 년 전 같은 제보를 받았지만 크게 다루지 않고 덮었다”고 고백한다. 피해자들의 절규에 똑같이 침묵한 언론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묻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 후반에 이르러 언론을 바라보는 두 영화의 시각이 미묘하게 바뀐다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 속 탐사보도팀장 윌터 로빈슨은 “몇 년 전 같은 제보를 받았지만 크게 다루지 않고 덮었다”고 고백한다. 피해자들의 절규에 똑같이 침묵한 언론에게 사회적 책무를 묻는 것이다.

반면 <더 포스트>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언론의 활약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스포트라이트>는 ‘언론이 왜 필요한가’를, <더 포스트>는 ‘그래서 언론은 필요하다’를 에둘러 말한 셈이다.


두 영화는 모두 외압을 극복하고 기사를 공개할 때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보통 카타르시스는 부족하거나 없는 걸 채워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지금처럼 언론이 독자들로부터 거대한 비판에 직면한 적 없는 이 때, 우리나라 관객들이 이들을 보며 더욱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말하는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smw@fnnews.com 신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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