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각자도생에 몰린 한국기업

"미국 시장은 전략적 비중이 크고, 프리미엄 시장이나 나노셀 TV를 판매해야 하는 시장이어서 어떤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준비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는 그런 것이 적용됐을 때 LG전자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가설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양재동 LG전자 R&D센터에서 열린 LG전자 2018년형 TV 신제품 발표회. 권봉석 LG전자 HE 사업본부장(사장)은 최근 거세지고 있는 미국의 통상압박과 관련한 기자들 질문에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준비하고 있다"며 담담하게 답했다.

눈으로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세계 최고 화질의 2018년형 'LG 올레드 TV'를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어떤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어떤 식으로 결론 나더라도…"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다. 미국의 통상압력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不可抗力)'적인 일로 받아들이는 한국 기업의 비장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트럼프 행정부의 극단적 보호무역주의는 트럼프 정권 출범 초기부터 전 세계가 알고 있었다. 현실화되고 있을 뿐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운 트럼프 정부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를 외치며 전 세계와 등지고 있다.

우리 기업에 대한 피해도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미국이 세탁기.태양광모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에 이어 모든 수입산 철강제품에 관세 25%를 부과키로 했다.

기세등등한 것은 미국 정부뿐만 아니다. 트럼프 정부를 등에 업은 미국 기업이 무차별적 제소를 벌이고 있다. 실제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수입규제 2월 월간동향'에 따르면 한국을 대상으로 한 각국의 수입규제 건수는 총 196건으로, 이 가운데 미국이 40건으로 가장 많다. 미국 수입규제 40건 중 30건은 반덤핑 조사다. 미국의 반덤핑 조치는 대부분 민간기업의 제소에 의해 이뤄지는데 우리 기업과 경쟁하는 미국 기업의 제소가 증가하고 있다는 게 무역협회의 설명이다.

이처럼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제대로 된 통상전략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최근 뒤늦게 예정에 없던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뚜렷한 대응방안은 내놓지 못했다.


결국 기업 스스로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편에선 미국에 공장을 새롭게 짓거나 공정을 앞당겨 건립하고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선 미국 정치권 등을 대상으로 로비활동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급등한 집값과 물가에 맞서 스스로 살길을 찾고 있는 국민도, 어떤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대처해 나가겠다는 기업도, 이제 나란히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걷게 됐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