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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무역전쟁 시작] 중국 때리려고 동맹국까지 겨냥.. 한·미 FTA 협상에도 불똥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09 18:15

수정 2018.03.09 18:15

트럼프 속전속결 서명.. NAFTA 협상 '지렛대' 활용
11월 중간선거 승리 위한 정치적 속셈도 크게 작용한듯
한국 철강산업 직격탄.. 美 "한국, 中 우회수출 창구"
우리정부, 계속 설득한다지만 과세 국가서 제외 힘들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강도 관세를 부과하는 규제 명령에 서명한 뒤 썼던 펜을 함께 모인 철강업계 관계자에게 건네고 있다. 그는 이날 서명식에서 "미국 산업이 외국의 공격적인 무역관행에 의해 파괴됐다"며 "우리를 나쁘게 대우한 많은 나라가 우리의 동맹"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강도 관세를 부과하는 규제 명령에 서명한 뒤 썼던 펜을 함께 모인 철강업계 관계자에게 건네고 있다. 그는 이날 서명식에서 "미국 산업이 외국의 공격적인 무역관행에 의해 파괴됐다"며 "우리를 나쁘게 대우한 많은 나라가 우리의 동맹"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전 세계 자유무역 체제를 뒤흔들고 있다. 8일(이하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안보(무역확장법 232조)를 빌미로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동맹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트럼프는 "무역전쟁은 이기기 쉽다"며 수입 철강(25%).알루미늄(10%)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 무역보복의 악순환이 전 세계로 확산될 경우 글로벌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고율 반덤핑관세에 더해 추가 관세까지 우리 철강업계 피해는 상당할 것으로 우려된다.

우리 정부는 한국산 철강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으며 오히려 미국 내 산업·일자리에 기여하고 있다는 설득전에 나섰지만 트럼프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정부는 미국 정부에 유감을 표시하고, 주요국들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9일 밝혔다. 다만 관세 발동까지 15일간 국가 및 품목 예외를 위해 미국과 끝까지 협의를 하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철강관세가 경제이슈를 넘어 트럼프의 11월 중간선거 승리를 위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점에서 관세 예외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설령 품목 예외 등 일부 양해를 구한다 해도 트럼프식의 협상 지렛대로 철강관세 면제에 상응하는 무언가 양보를 요구할 게 확실시된다.

■中 겨냥 무역전쟁에 동맹국 '직격탄'

트럼프는 철강관세를 속전속결로 강행했다. 당초 내달 초까지 트럼프의 최종 결정을 예상했으나, 미국 상무부의 권고안 제출(2월 16일) 이후 20일 만에 전격 결정했다. 게다가 미국 내 인플레이션 우려 등 연관 산업계 반발, 백악관 내분 등에 여러 잡음과 후폭풍에도 트럼프는 끄떡 하지 않고 철강관세를 밀어붙였다. 무역협회 통상지원단 제현정 연구위원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협상을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한 지렛대로 서둘러 서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철강관세는 트럼프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평평한 운동장'을 명분으로 한 무역보복이다. 트럼프는 그간 중국은 물론이고 동맹국들까지 불공정한 무역을 일삼아 미국은 당하기만 했다는 입장이다. 이날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트럼프는 "우리가 다른 나라들에 의해 불공정하게 다뤄졌기 때문에 공정함을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미국의 궁극적 타깃은 중국이다. 트럼프도 "우리는 중국과의 거래에서 1년에 5000억달러를 잃고 있다"고 했다. 중국을 겨냥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일본 등 여러 동맹국까지 싸잡아 관세를 부과하는 강경책을 고수한 셈이다. 정작 철강관세가 중국의 철강산업에 주는 타격이 미미하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중간선거 승리와 지지층 결집의 정치적 속셈이 크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동맹국들은 즉각 유감을 표시하며 보복관세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EU는 미국을 상징하는 제품들에 보복관세를, 중국은 미국산 곡물 등에 대한 시장조사와 고율관세를 매기겠다고 벼르고 있다. 미국의 약점을 잡아 보복하는 전면적 무역전쟁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래저래 우리 철강업계는 또 한번 직격탄을 맞게 됐다. 그간 미국 정부는 열연.냉연강판 등 한국산 철강제품에 최고 80%대의 높은 반덤핑 상계관세를 부과해 압박해오고 있다. 여기에 관세 25%가 더해지면서 사실상 수출길은 막히게 된다. 미국 원재료를 써서 자체 생산하지 않고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특히 미국에 주력으로 수출했던 셰일가스 유정용 강관(OCTG)은 기존 반덤핑관세에 추가 25% 관세를 더하면 70% 이상의 관세를 내야 한다. 이날 현대경제연구원 백다미 연구위원은 "미국이 수입철강 관세를 25%로 매길 경우 연간 대미 철강 수출(2017년 기준)이 40억2000만달러에서 31억4000만달러로 21.9%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전체 대미 수출은 677억달러로 1.3% 줄어들고, 한국의 부가가치는 앞으로 3년간 1조3000억원 이상, 취업자는 1만4000명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철강관세-한·미FTA 개정 연장선

결과적으로 우리 정부의 대응은 아쉽다. 그간 트럼프의 보호무역 기조가 일관되고 공격적인데도 우리는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통상조직도 제대로 정비하지 못했고, 경제통계치를 꺼내 설득하는 수준의 소극적 대응에 주력했다. 지난달 철강관세 결정이 임박해지자 우리 정부는 그제서야 미국에서 주요 결정권자를 만나 아웃리치(이해당사자 접촉 설득)에 나섰으나, 관세 예외국에 한국을 포함시키지는 못했다.

다만 아직도 일말의 여지는 있다. 이번 관세조치의 효력은 서명일로부터 15일 후인 오는 23일부터 시행되는데, 트럼프는 "최소한 15일간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어느 나라가 우리를 공정하게 대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도 이 기간 최대한 설득해 관세국 예외, 품목 예외 등을 끌어내 유리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대미 철강수출이 30% 이상 줄었고, 미국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중국산 우회수출은 극히 미미(중국산 소재 사용비중 2.4%, 대중국 철강수입 전년 대비 21% 감소)하다는 우리 입장은 이번 철강관세 결정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여전히 한국이 중국산 철강의 우회수출 창구라는 오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백악관 의사결정 라인을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윌버 로스 상무장관 등 과거 통상마찰 전력이 있는 '강성 보호무역주의자'들이 장악한 점도 우리에겐 불리하다.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도 철강관세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NAFTA 협상 식대로 우리에게 철강관세를 지렛대 삼아 자동차 추가 개방, 의약품 등 지식재산권 규제 완화, 쌀 등 농산물 관세일정 단축 등에서 압박해올 가능성이 높다.
이달 말께 한.미 FTA 개정 3차 협상이 열린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이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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