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이탈리아는 왜 분노하는가

"오성운동에 몰린 표의 3분의 1은 좌파에서, 3분의 1은 우파에서, 나머지 3분의 1은 전에 투표를 안 했던 사람들이 찍은 겁니다."

이탈리아 여론조사기관인 유트렌드의 로렌조 프레글리아스코 대표는 지난 4일(현지시간) 치러진 이탈리아 총선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로 오성운동을 위해 투표한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이 속한 당의 뺨을 때리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한 겁니다."

이달 이탈리아 총선에서 창당 9년차인 오성운동이 승리하자 유럽 각지에서는 놀라움과 탄식이 이어졌다. 유럽연합(EU) 창립회원이자 EU 3위 경제 대국의 방향이 EU 탈퇴를 외치는 정당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허나 현지에서는 이미 예상된 결과라는 반응이다. 이탈리아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권과 무책임한 EU 모두에 말이다. 그들은 결국 이 모든 것을 부정하는 '반체제 정당'의 손을 들어줬다.

이탈리아 국민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3년까지 우파에, 올해까지는 좌파에 각각 약 5년씩 정부를 맡겼다. 그렇게 10년이 지났지만 이탈리아의 경제성장률은 아직도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이탈리아 외에 이런 상황에 빠진 국가는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그리스뿐이다. 2007년 5.7%였던 실업률은 2014년(13%)에 정점을 찍은 뒤 현재 11% 수준으로 내려왔지만 산업기반이 부족한 남부지역 실업률은 아직까지 18.3%에 이른다. 이탈리아의 청년실업률은 지난달 31.5%에 달했다. 좌파 정부는 지난 4년간 약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었으나 이 중 60%는 시간제였다.

여기에 고질적 부패까지 겹치면서 이탈리아 국민은 기성 정치권에 몸서리를 쳤다. 마피아와 결탁, 뇌물, 탈세 등 약 2500건의 기소에 연루된 우파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결국 2011년에 사임하긴 했지만 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2014년부터 2년간 좌파를 이끌었던 마테오 렌치 전 총리는 지난해 3월 아버지와 측근들이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 부패 스캔들에 이름을 올렸다.

이 와중에 EU는 이탈리아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탈리아가 지난 1999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 들어가면서 화폐가치 절하 같은 경제회복을 위한 통화정책을 잃어버렸다고 평가했다. EU와 유로존은 2011년 이후 그리스와 스페인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동시에 경제난에 시달리는 남유럽 국가들에 강력한 긴축정책을 요구했고 이탈리아 국민도 이를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EU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결정적인 계기는 2015년 유럽 난민사태였다. EU는 시리아와 리비아 등에서 유럽을 향해 몰려드는 난민들이 가장 가까운 이탈리아로 쏟아지는 상황에서 난민이 도착한 회원국이 난민 수용을 맡아야 한다는 더블린 조약을 꺼내들었다. EU는 이탈리아가 수십만명의 난민에 허덕이자 부랴부랴 다른 회원국에 강제로 난민 수용을 할당했지만 동유럽 국가 등의 반대로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성운동은 이처럼 무능하고 부패한 데다 무책임한 기존 체제에 분노한 이탈리아 국민에게 '그나마 괜찮은' 대안이었다. 오성운동은 전직 코미디언 출신인 베페 그릴로가 2009년 창당한 대안정당으로, 좌우가 아닌 반체제 정당을 자처하고 있다. 명칭에서도 기존 정치권과 결별한다는 의미에서 '당'이 아닌 '운동'이라는 단어를 쓴다.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하며 '루소'라는 인터넷 플랫폼을 이용해 정책결정, 후보 출마 등을 관리한다.

이탈리아 안팎의 외신들은 현재 오성운동을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당으로 분류한다. 기성 정치권은 포퓰리즘을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나쁜 체제로 묘사하지만 그 이념 자체는 민주주의와 같은 맥락이다.
2003년 브라질 룰라 정권처럼 성공한 포퓰리즘 사례도 있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10년간의 분노를 참다 못해 포퓰리즘 정당을 선택했다. 오성운동이 기성 정치권을 대체할 성공적인 대안이 될지는 이제 이탈리아 국민들 손에 달렸다.

박종원 국제부 기자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