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워라밸'과 최저임금

지령 5000호 이벤트
'평일에는 오후 6시 퇴근, 가족과의 저녁 식사 및 대화. 주말에는 완전한 휴식과 여행.'

모든 직장인이 꿈꾸는 '워라밸(워크 라이프 밸런스)'의 모습이다. 주중 업무시간에는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 주말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휴식 보장. 일부 잘사는 선진국에서나 일어날 것 같던 워라밸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하나의 시대적인 흐름이 됐다. 경제 고도성장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가졌던 기성세대와 달리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삶의 여유 선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은 시대에 부합하는 정책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임금을 올리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 워라밸을 충족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최저임금이 인상된 지 3개월째에 접어들면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로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이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6일 현재 102만9000명이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했다. 정부가 추산한 전체 신청 대상자 236만4000명의 43% 수준이지만 1월 3600명 수준이던 일평균 신청 근로자 수가 2월 4만599명으로 급증, 고무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전체 신청자 중 74%가 1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여서 입소문이 퍼지면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이 더 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인다. 행복한 삶을 위한 정책은 확실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중소기업은 채용을 고민하고 있고, 소상인들은 삶의 질은 고려할 상황이 아니다.

잡코리아에 따르면 종업원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 429개 가운데 43.4%만이 올해 신입직원 채용계획을 세웠고 지난해 신입직원을 채용한 기업 가운데 57%가량이 올해는 채용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인건비 인상에 대한 부담이 일자리 감소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소상인들은 최근 하루 평균 10.9시간을 일하고 있지만 직원 채용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보다 여유로운 삶을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고 싶지만 한달 평균 수입이 354만원 선에 불과해 임금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행보가 시작됐다. 벌써부터 걱정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는 예상대로 별다른 성과 없이 종료돼 공은 국회와 정부로 넘어간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서는 내년은 물론 2020년 최저임금도 두자릿수 증가폭을 기록해야 한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방향은 맞다. 그러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정부에서도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달성 시기를 유연하게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특정 연도를 정하기보다는 제반 사항을 검토해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고,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2020년으로 못 박지는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주변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강행한다면 "저녁이 있는 삶은 확보가 됐는데…. 저녁(밥)의 질이 떨어졌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워라밸'과 만족스러운 저녁, 두 가지를 다 잡으려면 속도를 조금 늦춰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할 수밖에 없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기자 김기석 산업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