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업계 최초'보단 '상도의'가 먼저

이유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12 16:59

수정 2018.03.12 16:59

[기자수첩]'업계 최초'보단 '상도의'가 먼저


지난 1월 30일 기자는 퍼시스그룹의 의자 전문 기업인 시디즈로부터 한 통의 보도자료를 받았다. 업계 최초로 사물인터넷(IoT) 의자를 출시한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날 오후 경쟁사이자 듀오백 의자로 유명한 디비케이도 업계 최초로 IoT 의자를 출시하고 관련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국내 의자산업의 대표 두 기업이 같은 날 '업계 최초'의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우연 치고 같은 날 업계 최초 제품이 동시에 출시된 것이 어색해 보였다.

특히 시디즈와 디비케이의 반목이 오래된 것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랬다.
양사는 지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특허분쟁을 겪은 바 있다. 디비케이는 2008년 특허 등록한 '듀얼린더' 기능의 가스실린더를 제품에 적용했는데 시디즈가 2011년 '링고'라는 제품에 유사기능의 스위치 중심봉을 적용하자 2012년 특허침해 소송을 청구, 승소했다. 이후 시디즈가 다시 듀얼린더와 흡사한 스위치 중심봉을 탑재한 제품 '미또'를 출시하자 디비케이는 2013년 권리범위확인심판 청구에 나섰고, 2016년 디비케이가 최종 승소한 바 있다.

이날 시디즈는 보도자료만을 보냈고, 디비케이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후 취재 결과 디비케이가 '업계 최초'인 것으로 확인됐다. 디비케이는 기자간담회 당일 대리점 배포와 SK스마트홈에 등록돼 있던 상태였다. 시디즈는 2월 27일 해당 제품을 대리점과 LG유플러스 스마트홈에 배포했다.

결과적으로 해석하면 시디즈는 '업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갖기 위해 '출시 예정'인 제품을 '출시'했다고 보도자료를 낸 셈이었다. 더욱이 경쟁사의 제품 출시 기자간담회가 열리기 반나절 앞서 자료를 내면서 '경쟁사의 잔칫상에 재를 뿌렸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시디즈와 디비케이는 국내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의자가 책상에 딸린 부속품이 아닌 '가구'로 인식되도록 노력해온 회사들이다. 시디즈는 기업간 시장(B2B), 디비케이는 소비자 시장(B2C)에서 강점을 보여왔다. 양사 간 건전한 경쟁은 우수제품의 개발로 이어진다.
굳이 '업계 최초'가 아니더라도 제품을 잘 만들어내면 소비자들은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도의 안에서 건전한 경쟁을 원한다.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된다면 오히려 소비자들이 외면할 수 있음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leeyb@fnnews.com 산업2부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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