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소유하기 보다 경험한다".. 급변하는 新 음악문화

조재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17 10:00

수정 2018.03.17 10:00

- 내한공연 매진, 국내 뮤직페스티벌 활성화
- 소비 트렌드 변화, '경험하는 음악' 소비
- ‘인증 소비’, ‘휘소가치’, ‘소확행’ 신조어 등장 배경
'소유하는 음악'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이 보고 싶은 공연을 찾아보고 SNS에 인증하는 '경험하는 음악'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사진=pxhere
'소유하는 음악'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이 보고 싶은 공연을 찾아보고 SNS에 인증하는 '경험하는 음악'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사진=pxhere

지난 15일 서울 잠실 올림픽홀에서 열린 존 레전드 내한공연 티켓은 단 3분 만에 ‘완판’됐다. 한국에서 '유독 안 통하는 스타'로 이름 난 케이티 페리의 내한공연도 10분 만에 티켓 1만 장이 매진됐다.

당초 예상보다 뜨거운 해외 뮤지션들의 티켓 매진 행진에 국내 음악·공연 시장이 들썩인다. 음반이나 음원은 사지 않는데 공연은 순식간에 매진되니 일각에서는 ‘기현상’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국내 음반 판매량이 저조한 글로벌 스타의 내한공연 매진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내한공연만이 아니다. 뮤직 페스티벌의 외연이 넓어지며 즐길 만한 공연이 다양해지고 있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는 폴 매카트니, 스티비 원더, 콜드플레이, 마룬5, 비욘세, 에미넴, 레이디 가가 등 글로벌 스타의 내한공연을 기획해 주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지산 록 페스티벌, 그랜드민트 페스티벌, 그린플러그드, 레인보우 아일랜드 등 록 페스티벌 중심으로 열리던 음악 축제도 장르가 다양해진지 오래다. 서울재즈페스티벌, 자라섬 국제 재즈페스티벌, 힙합플레이야 페스티벌, 월드디제이페스티벌 등 재즈, 힙합, EDM 등으로 공연 축제가 확장됐고 중소 규모 공연도 전국 각지에 생겨나고 있다.

■ ‘경험'하는 음악이 소비를 주도한다

‘듣고 소유하는 음악’에서 ‘경험하는 음악’으로 소비 트렌드가 변하고 있고 그 중심에 SNS가 있다. 젊은층은 SNS를 통해 자신의 소비를 주변에 알린다. '인스타그래머블'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인스타그래머블은 '인스타그램(Instagram)'과 '~할 수 있는(able)'의 합성어로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것’을 의미한다. 일종의 '소비 인증'인 셈이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대 남녀 600명 중 46.3%가 'SNS를 통한 소비 인증이 소비의 만족감, 즐거움 증대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다른 사람이 SNS에 인증한 것을 보고 소비 욕구가 들거나 소비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38.8%를 차지했다.

소비 인증의 대상은 가격과 종류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면 작은 소품부터 카페, 지역 명물, 맛집, 전시, 명품, 콘서트까지 가리지 않는다.

특히 해외 아티스트의 내한공연은 남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차별화된 경험’을 뽐내는 수단이다. 해당 아티스트의 골수팬이 아니더라도 공연장에 일반 대중이 몰릴 수 있는 이유다.

세계적 팝스타 존 레전드(왼쪽)와 케이티 페리(오른쪽). 국내 음반 판매 실적은 부진하지만 올해 계획된 내한공연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됐다./에이아이엠,파파스이엔엠 제공
세계적 팝스타 존 레전드(왼쪽)와 케이티 페리(오른쪽). 국내 음반 판매 실적은 부진하지만 올해 계획된 내한공연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됐다./에이아이엠,파파스이엔엠 제공

■ ‘소유'하는 음악의 급감, 원인은 '스트리밍'

공연 문화 확산과 SNS가 소유하는 음악의 감소를 부른 절대적 이유는 아니다. 음반과 음원 판매 감소는 근본적으로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한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PwC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4년만 해도 스트리밍은 다운로드 시장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다 애플 뮤직, 유튜브 레드, 스포티파이 등 대형 스트리밍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2015년에는 다운로드 시장 규모를 추월, 2016년에는 66억5000만 달러 규모의 대형 시장으로 커졌다. 이는 34억8500만 달러인 음원 다운로드 시장의 2배에 육박한다. PwC는 오는 2021년에는 음원 다운로드 시장이 스트리밍 시장의 6%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데이터 요금 인하 등 듣는 환경의 변화로부터 시작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해 ‘2016년 음악산업백서’를 발간하면서 청취 환경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여기서 응답자 1200명(복수응답) 중 91%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감상한다’고 답했다. CD·DVD·블루레이 기기를 통해 음악을 감상한다는 답변은 25.6%에 그쳤고 MP3 플레이어를 사용한다는 응답은 10.9%에 불과했다. 반대로 보면 74.4%는 디스크 매체를 통해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스트리밍 서비스는 네트워크에 연결된 PC나 스마트폰 상에서 구현된다. 전문 음향 기기와 음원 서비스의 설 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인증 소비’, ‘휘소가치’, ‘소확행’.. 신조어, 결국 행복 위한 것

공연기획사 에이아이엠에 따르면, 존 레전드 내한공연 전체 예매자 중 20대는 57.7%였다. 30대 이상이 주요 팬층으로 여겨졌던 레전드의 공연에 20대 관객이 늘어난 것. 케이티 페리 공연도 58%가 25세 이하 관객이었다.

에이아이엠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20대가 공연을 가장 많이 보는 세대"라며 "특히 영화나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유명 가수의 내한공연은 일단 가보자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20대의 소비 행태가 변하고 있고 그 변화에 따른 현상 중 하나라는 게 에이아이엠의 분석이다.

올해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꼽은 20대 트렌드 키워드 중에 ‘휘소가치’가 있다. ‘휘발적’과 ‘희소가치’가 합쳐져 ‘흩어지는 가치에 지갑을 연다’는 표현이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젊은 세대의 소비 방식이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 박진수 연구원은 "(젊은층은) 소비 행위를 통해, 추구하는 효용 가치가 구매하는 시점과 최대한 일치하기를 바라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즉, 소유보다 구매와 경험 자체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을 지닌 신조어 ‘소확행’에서도 이런 경향이 엿보인다. '소확행'은 크든 작든 각자의 삶 속에서 실현할 수 있는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려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영화 ‘비긴 어게인’을 감명 깊게 본 사람이 주제가를 부른 애덤 리바인(Maroon5)의 공연을 찾아가고, 그 감동을 SNS에 인증하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개인의 만족과 현재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박 연구원은 "비교적 고가의 뮤직 페스티벌이나 내한공연의 인기도 '즐길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20대에게는 현재의 행복을 위한 특별한 경험을 소비하는 것이 합리적인 생존전략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상이 변화하면 중요시되는 가치도 변하기 마련이다.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는 젊은층의 가치 변화가 새로운 공연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ocmcho@fnnews.com 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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