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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인공지능 법조인 시대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14 17:33

수정 2018.03.14 17:33

[차장칼럼]인공지능 법조인 시대


핵전쟁 이후 인류에게 남겨진 마지막 도시 '메가시티 원'은 협소해진 공간과 제한적 자원으로 무질서한 범죄도시로 변질됐다. 정부는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궁극의 법정 시스템을 도입하게 된다. 바로 '저지(Judge)'라는 엘리트 집단이다. 그들은 체포한 범인을 즉결 재판, 판결, 처형까지 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도시의 질서를 유지한다.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1995년 개봉작인 영화 '저지드레드'의 한 장면이다. 당시만 해도 이 영화는 작가적 상상력을 십분 발휘한 것으로, 실제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였다.
무엇보다 복잡한 형사사법 절차를 현장에서 바로 판단을 내리고 형을 집행하는 장면은 당시로선 허구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을 감안해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현재 형사사건에서 최종 유무죄 판단이 내려지기까지는 통상 수년이 걸린다. 민사사건은 이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건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영화처럼 조만간 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기간이 과거에 비해 대폭 짧아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기술인 AI는 은행.보험.의료.교육.제조업뿐 아니라 소위 '리걸테크(legaltech) 산업'으로도 불리며 법률시장을 조금씩 파고들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법률선진국에 비해 국내 법률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최근 법률문서를 자동으로 작성해주는 업체가 등장했다. 한 청년변호사가 국내 한 IT업체와 손잡고 설립한 이곳은 투자계약서 등 기업의 중요문서와 내용증명, 위임장 등을 체크리스트 클릭만으로 수분 만에 무료로 자동 작성해준다. 한 대형로펌은 일반적 문장(자연어)을 입력하면 이를 법률용어로 이해하고 법적 추론을 통해 이에 해당하는 법률과 판례, 개략적인 정답을 내놓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AI변호사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021년 시행을 목표로 빅데이터 기반의 지능형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구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대법원은 AI 소송 도우미도 개발할 계획이다. 의뢰인 입장에서는 판사나 변호사의 사건검토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소송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AI변호사의 등장을 그다지 달가워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무너뜨릴 수 있고, 궁극적으로 AI가 법조인의 역할을 상당 부분 담당하면서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국내외 미래학자들은 AI가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창의력을 발휘할 정도가 돼도 변화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해해 법적 결론을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AI변호사의 등장은 인간의 오판을 줄이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상당부분 도움이 될 것이다.
AI판사 시대가 올 날도 멀지 않았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조상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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