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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표하는 기업 투자계획


진풍경이었다. 정부가 한 기업의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모습이 그랬다. SK그룹은 지난 14일 3년간 80조원을 쏟아 붓겠다며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최태원 회장이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서울 종로 SK서린빌딩에서 만나 이른바 '혁신성장 현장소통 간담회'를 한 이후였다. 관심은 SK그룹의 투자에 쏠렸다. 그런데 SK그룹이 직접 발표를 하지 않고 기획재정부가 대신해 투자 내용과 채용 규모를 공개했다. 정부 발표 전까지 SK그룹 관계자들은 구체적인 투자 내용에 대해선 언급을 자제했다. 정부 발표가 예정돼 있었던 만큼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최 회장도 말을 아꼈다. 김 부총리를 본사 1층 로비에서 배웅한 후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최 회장에게 구체적인 투자 내용을 물어봤다. 최 회장은 두 손을 들어 손사래를 치면서 "(기재부)보도자료에 다 나갈 겁니다"라고 답했다.

그 시간 김 부총리는 SK사옥 앞에서 기자들에게 간담회 결과에 대해 간략히 브리핑을 했다. 투자를 하는 당사자인 기업을 놔두고 굳이 정부가 나서서 설명을 하는 모습이 어색해 보였다. 주인이 버젓이 있는데도 손님이 마치 주인처럼 행동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손님이 나섰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배포된 보도자료 내용에 실수도 있었다. SK그룹이 3년간 투자할 분야와 규모, 주요 내용을 담은 표에서 에너지 신산업과 차세대 ICT 분야의 투자 내용이 뒤바뀌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실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아닌 사업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SK 측에서 자료를 만들었다면 그러한 실수가 나올 수 있었을까.

김 부총리는 간담회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시장과 기업이라며 협력을 당부했다. 또 정부 경제정책의 방향으로 혁신성장을 언급하며 민간부문이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규제완화 정책수단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간담회 이후 브리핑에서도 "SK측에 투자를 요청했느냐"는 질문에 "요청이 아니다"라고 콕 짚어 정정하기도 했다. 정부의 주도가 아닌 민간 차원에서의 투자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기업의 투자는 경영전략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수십조원을 쏟아 붓는 대규모 투자는 기업의 명운이 걸린 계획이다.

이처럼 중요한 전략 발표에서 해당 기업이 아닌 정부가 주체가 되면서도 기업 중심의 일자리 창출과 민간 주도의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정부의 주장은 모순적이다. 정부부터 본연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gmin@fnnews.com 조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