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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다양한 언어가 통하는 나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21 17:02

수정 2018.03.21 17:02

[여의나루] 다양한 언어가 통하는 나라


2018년은 세종대왕이 조선의 4대 왕으로 즉위한 지 600년이 되는 해이다.

1418년 만 21세의 나이에 조선의 왕위에 올라 1450년까지 32년간 재위하면서 과학, 농업, 의약, 음악, 교육, 국방, 예술, 법제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가장 중요한 업적을 꼽으라면 훈민정음 반포라는 데 이견이 없다고 본다. 백성을 하늘처럼 생각하는 천민(天民)사상을 실천하면서 고유의 글을 가지지 못한 조선의 백성을 위해 많은 신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글창제 작업을 했고, 즉위 28년째인 1446년에 반포했다. 한글 반포를 계기로 우리는 고유의 문자를 가진 문화민족이 됐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한글이라는 고유의 문자를 가졌다는 데 너무 안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정학적 위치가 동북아의 끝인 것도 원인이기는 하겠지만, 한반도를 벗어나 세계와의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는 데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아쉬운 면이 있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 직후 올림픽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KTX를 타고 강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강릉 시내를 오가면서 외국인 입장에서 살펴보니 역, 음식점 등에서 종사자들이 친절하기는 한 반면 의사소통에 애를 먹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역대 최고의 대회가 된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기여한 인상적인 개회식.폐회식, 훌륭한 경기시설, 질서정연하고 세심한 경기 운영, 안전한 치안, 정보통신기술(ICT) 첨단기술 시연, 친절한 자원봉사 제공에도 불구하고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일반국민의 외국어 구사력이라고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성실히 영어를 배웠으나 영어 구사에 애를 먹는 국민에 대해 세종대왕은 어떤 처방을 내놓을까.

요즘 젊은이들에게 영어 카페가 인기가 높다고 한다. 커피나 맥주 한 잔 시켜놓고 내.외국인이 어울려서 영어로만 대화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우리 정부가 글로벌 집적지로 키우고 있는 판교, 송도와 같은 지역에 영어를 업무용 공용어로 쓰게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외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은 좋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학습하고 말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 국민이 외국어를 일상생활에서 접하고 써볼 수 있는 환경을 더 많이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거의 모든 국민이 다양한 언어를 구사한다는 면에서 우리가 본받을 나라가 있다. 유럽의 알프스산맥에 자리 잡고 있는 작지만 아름답고 강한 나라 스위스다. 한반도의 5분의 1 면적에 인구 823만명, 1인당 국민소득이 8만달러를 넘은 나라다. 이 나라에 풍부한 것이 있는데 바로 언어다.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와 로망슈어, 스위스는 이 네 가지 언어를 모두 공용어로 인정하고 정부의 공식 문서도 4개 언어로 표기된다. 또한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졸업한 스위스 국민이면 영어를 포함, 3~4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스위스에 유난히 국제기구가 많고 금융, 관광의 중심이 된 것도 언어가 풍부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 국민도 정상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3가지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환경을 만들자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외국어 학습은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에 가장 적합한 한글, 글로벌하게 가장 많이 쓰는 영어에 더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제2, 제3의 외국어까지 구사할 수 있다면 세종대왕도 흐뭇해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재유 법무법인 세종 고문. 전 미래부 제2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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