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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헌법은 국정철학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21 17:02

수정 2018.03.21 17:02

청와대 개헌안 정파색 짙어 국가 앞세우고 시장은 뒷전
청와대가 21일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을 2차로 공개했다.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못 박고, 경제민주화 조항을 더 세게 손질했다.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는 조항도 넣기로 했다. 20∼21일 이틀간 공개된 대통령 개헌안은 마치 문재인정부의 국정철학을 망라한 듯한 인상을 준다. 헌법에 진영 또는 이념 색채가 짙게 배었다. 헌법은 국가를 지탱하는 최상위 지배구조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모습을 보여선 곤란하다.

수긍할 대목도 있다. 지방분권은 분명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서울 중심의 수도권 집중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높다. 그중에서도 재정분권이 급하다. 지자체장들은 '2할 자치'라고 자조한다. 지자체 예산의 80%를 중앙정부가 쥐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구조 아래서 지방자치는 허울에 불과하다. 헌법 개정 여부를 떠나 국세.지방세목 조정 등을 통한 지방분권을 서둘러야 한다. 중앙이 예산과 인력을 틀어쥔 중앙집권제는 개인, 자율, 창의력을 중시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같은 시각에서 토지공개념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지난해 가을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국회 대표연설에서 19세기 미국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를 언급했다. 조지는 '진보와 빈곤'이란 책에서 땅에서 생기는 모든 이익을 세금으로 걷자고 주장한 급진파다. 자연 그의 주장은 사회주의적이란 비판을 받는다.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헨리 조지는 설 자리가 없다. 청와대 개헌안은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전제를 두긴 했으나 사회주의적이란 오해를 받을 만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인 사유재산권과 충돌도 불가피하다.

개헌안은 또 경제민주화 조항(119조2항)에 소상공인 보호와 육성을 명시했다. 국가가 앞장서서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보호하겠다는 뜻이다. 소상공인이 겪는 어려움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지금도 동반성장위원회가 중기 적합업종을 지정한다. 또 국회는 대형마트의 영업일까지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야 혁신을 가로막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대통령 개헌안은 큰 정부, 국가 개입주의로 방향을 잡았다. 그 통에 시장과 자율, 경쟁은 뒷전으로 밀렸다.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나라답지 않다. 사실 청와대 개헌안은 선언적 의미가 크다. 의석 분포로 볼 때 국회 통과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116석을 가진 자유한국당 혼자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헌법은 나라를 운영하는 틀이다.
강한 정파성을 띤 개헌안은 옳지도 않고, 통과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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