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fn 해외 대기획 3탄]"석유만 믿고 퍼준 의료복지, 결국은 적립금 고갈 부메랑"

김유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22 17:06

수정 2018.03.22 17:13

[포퓰리즘의 비극 중남미를 가다]<3>베네수엘라-붕괴된 의료서비스
의.약사들 포퓰리즘에 분통
지난 1일 카라카스 알타미라지역 내 한 대형 체인약국 앞에서 사람들이 줄 지어 서 있다. 이를 본 베네수엘라 한 시민은 '국가가 공급하는 싼 약품이 들어와서 사람들이 몰렸을 것'이라고 귀띔했다./사진=김유아 기자
지난 1일 카라카스 알타미라지역 내 한 대형 체인약국 앞에서 사람들이 줄 지어 서 있다. 이를 본 베네수엘라 한 시민은 '국가가 공급하는 싼 약품이 들어와서 사람들이 몰렸을 것'이라고 귀띔했다./사진=김유아 기자

【 카라카스(베네수엘라)=김유아 김문희 기자】 "베네수엘라 의학은 남미에서 최고였는데…."

베네수엘라에서 만난 의사와 약사들은 하나같이 베네수엘라 의료기술이 위용을 자랑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지금은 병원 진료는 물론 약을 구하기조차 어렵다.
지난 2일 만난 의사 2명과 약사 1명은 하소연만 늘어놨다.

29년차 외상외과 의사 페르난도 곤살레스 페레스씨(66)는 과거 베네수엘라 의학수준이 정점을 달했던 시기부터 의료서비스가 붕괴돼버린 현재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목격해 왔다. 그는 "베네수엘라에서 의사를 하려면 공부를 많이 그리고 오래 해야 했다. 교육수준이 굉장히 높았다"고 떠올렸다.

페레스씨는 의대 입학 후 3년간 이론공부, 3년간 실습과정을 거친 뒤 졸업했다. 이후 1년간 지방에서 실습하고 수도인 카라카스로 돌아와 2년간 인턴과정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외상외과 의사가 됐다. 이후에도 그는 공부를 지속해 방사선과와 침술 분야에서도 진료를 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의사에 대한 대우도 좋았다. 1989년 그가 처음 받은 월급은 1200달러. 그는 돈을 모아둔 일부 의사들은 미국이나 독일에 건너가 유학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재 페레스씨의 한달 월급은 4달러다. 최저임금과 비슷한 금액이다. 오후에 문을 여는 그의 개인병원에서는 돈도 거의 안 받고 환자들을 치료해준다. 그는 "예전에는 음악감상도 좋아하고 시 낭송도 즐겨 했는데 지금은 꿈을 다 잃었다"며 한탄했다.

카라카스 국립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에드가 소틸로씨(49)는 현재와 같은 베네수엘라 의료계 몰락이 결국 "포퓰리즘과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정부가 석유만 믿고 대책 없이 의료복지 혜택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KOTRA 카라카스 무역관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사회보험공단은 전국에 352개 의료센터를 운영하면서 각종 진료 서비스와 고비용 의약품.의료기기를 저비용에 혹은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치과에서 보철 교정치료를 받으면 한화로 단돈 2만~3만원만 내면 된다. 물가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한국에 비해 진료비가 상당히 싼 편이다.

사회보험공단 의료센터는 근로자와 고용주가 납부하는 보험료와 정부기관인 사회노동부가 지원하는 예산으로 운영된다. 원래는 세금을 납부하는 근로자만 사회보험공단 의료센터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지난 2012년 차베스 정권이 세금을 내지 않는 지하경제 종사자들에게까지 혜택 범위를 넓혔다. 당시 증세는 없었다.

소틸로씨는 "세금도 안 내는 노점상들이 다 사회보험공단 의료센터로 몰려와서 혜택을 받아가다 보니 결국 적립금이 고갈됐다"며 "차베스의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베네수엘라 의료계가 자랑하던 예전의 위용을 되찾으려면 정부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베네수엘라 중앙대학 소속 약사 루이스 모나스테리오씨(50)는 "나랏돈으로 다 지원하게 되면 의료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무조건 나라가 책임진다는 식의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달러를 독점하며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비싸게 수입한 뒤 국내에는 싸게 배포하는 정부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kua@fnnews.com 김유아 김문희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