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퇴직연금, 잘 굴러갑니까

지난해 수익률 겨우 1%대.. 수백조원 구석에 처박힌 셈
전문가에 운용 맡기면 어떤가


내 퇴직연금 이야기를 해보자. 2012년 8월에 가입했으니 5년 반 됐다. 수익률을 보니 애걔, 5% 조금 넘는다. 쥐꼬리가 따로 없다. 잘 아는 은행원한테 5년 동안 정기예금에 넣으면 얼마나 나오느냐고 물었다. 2012년에 넣었다면 이자가 18%가량 된다는 답을 받았다. 퇴직연금 수익률보다 세 배 이상 높다. 차라리 정기예금에 넣은 것만 못하다. 한마디로 내 퇴직연금 플랜은 엉망이다.

내 잘못이 크다. 은행 퇴직연금에 가입한 게 첫번째 실수다. 아무래도 은행은 자금을 보수적으로 굴린다. 게다가 나는 자산 포트폴리오까지 보수적으로 짰다. 정기예금에 80%, 채권혼합에 20%를 넣으라고 지시했다. 채권혼합형은 주식이 절반을 넘지 못한다. 그러니 아무리 증시가 좋아도 그림의 떡이다. 이 마당에 은행은 해마다 수수료를 따박따박 떼간다. 그러니 수익률이 바닥을 길 수밖에.

둘러보니 나같은 직장인이 발에 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수익률은 1.88%에 그쳤다. 정기예금 같은 원리금 보장상품은 더 낮은 1.49%다. 퇴직연금 가운데 88%가 원리금 보장상품에 들어가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죄다 엉망이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퇴직연금 가입자는 총 624만명이다(2016년 9월 기준). 전체 근로자의 절반을 약간 웃돈다. 적립금은 쑥쑥 자라는 중이다. 지난해 168조원으로 1년새 15% 늘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030년께 10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 같은 해 국민연금 적립금은 1700조원으로 추정된다. 2050년이 되면 퇴직연금에 쌓인 돈이 국민연금을 앞지를 거란 예측도 있다.

은퇴설계 전문가들은 3층집을 지으라고 권한다. 1층이 국민연금, 2층이 퇴직연금, 3층이 개인연금이다. 적어도 2층집은 지어야 긴 노후가 불행하지 않다. 아파트 관리비는 국민연금으로 내고, 외식은 퇴직연금으로 하면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퇴직연금은 많이 받을수록 좋다. 수익률을 높일 묘수가 없을까.

지금은 돈을 어떻게 굴릴지 개인이 정한다. 이래선 수익률을 높일 수 없다. 대다수 직장인들은 여전히 퇴직연금을 과거 퇴직금처럼 본다. 그저 안전이 최고다. 그래서 그냥 정기예금에 묻는다. 주무부서인 고용노동부도 수익보다 안전을 중시한다.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 싶다. 퇴직연금 운용을 아예 국민연금에 맡기면 어떨까. 국민연금 역시 안전성을 최고로 친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괜찮은 수익률을 올린다. 지난해 수익률은 7.26%를 기록했다. 1988년부터 작년까지 29년 간 평균 수익률은 6%다. 돈의 성격이 다른데 어떻게 한 군데서 관리하냐고? 전 세계 어디서도 그런 사례를 본 적이 없다고?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가칭 퇴직연금관리공단을 두는 건 어떨까. 이때도 국민연금이 모델이다. 국민연금공단은 보건복지부 아래 있다. 공단 안에 기금운용본부를 두고 자금을 굴린다. 운용본부는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정한 테두리 안에서 움직인다. 같은 방식을 퇴직연금에 적용하면, 고용부 아래 퇴직연금공단을 두고, 공단 안에 전문 운용팀을 두면 된다. 운용팀은 고용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퇴직연금운용위'가 정한 지침을 따른다.

이 역시 쉽지 않다는 거 안다.
퇴직급여법부터 바꿔야 할 게다. 알면서도 엉뚱한 제안을 한 것은 퇴직연금을 지금처럼 구석에 처박아 두는 게 못내 아쉬워서다. 퇴직연금 다시보기 캠페인이라도 펼치고 싶은 심정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