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윤중로]입안에서 보석을 굴리는 재미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26 17:19

수정 2018.03.26 17:19

[윤중로]입안에서 보석을 굴리는 재미


#1. "아차차…. 진작에 먹을걸." 며칠 전 아껴두던 와인을 땄다. 고가의 와인을 별로 접해보지 못한 내게 중국에 사는 처남이 선물로 준 마르케스 데 카세라스의 '가우디움'은 상당히 좋은 와인이다. '고가의 와인은 디캔팅을 해서 먹는 게 좋다'고 들어온 터라 30분가량 나름의 절차를 거쳤지만 첫 맛은 너무도 밋밋하고 살짝 누린맛까지 났다. 냉장고 안에 고히 모셔뒀던 이 와인은 사실 병을 개봉할 때부터 코르크 상태가 좋지 못했다. 그래도 설마하는 마음에 디캔팅까지 거쳤지만 이질적인 맛이 났다. 와인이 변질된 게 분명했다.


#2. 아내와 '맛없는 와인'을 놓고 일상의 수다를 이어갔다. 내키지 않는 맛에 몇 모금씩 마시던 와인은 1시간여가 지나자 어느덧 병의 3분의 2가 비었다. "익숙해져서 그런지 나름 맛있네." 입맛이 예민한 아내가 말했다. 다시 와인잔에 입을 가져갔다. "맛이 완전히 달라졌네." 입안에서 가죽향과 너트향, 꽃향을 비롯해 여러가지 향이 휘몰아쳤다. 부케향이다. 개봉한 지 2시간 정도 지나자 비로소 와인이 깨어난 것이다.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와인병에 아쉬운 눈길이 자꾸 모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요즘 와인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우디움 와인은 이렇듯 내게 디캔팅에 대해 알게해줬다. 주말 저녁이면 집에 들어가기 전 백화점 와인숍을 자주 찾는다. 와인이 아직 대중화가 덜돼서인지, 아니면 원래가 그 가격이었는지 모르지만 요즘은 꽤 좋은 와인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비싼 와인은 아예 엄두도 내지 않고 있다. 금액을 감당할 수 없기도 하지만 와인에 대해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와인을 알게 되면 지갑이 얇아진다'는 말이 있다. 알면 알수록 고가의 와인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어서다. 한 번 빠져들면 끝을 보는 성격을 잘 아는 아내는 나의 와인 취향에 마지노선을 그어놓았다. 그 마지노선은 '할인가격 기준 3만원대 이하, 일주일에 3병 미만'이다.

요즘은 이탈리아 와인과 스페인 와인에 빠져 있다. 검붉은 진한 색과 고급스러운 향의 이탈리아 만두리아 와인을 좋아하다 최근에는 아마로네 와인을 접하고는 계속 빠져든다. 아마로네 와인은 이탈리아 베세토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으로 수확한 포도를 볏집에 말린 후 꾸덕꾸덕 건포도처럼 된 상태에서 와인을 담그기 때문에 일반 와인과 다른 독특한 맛을 낸다. 알코올도수가 15도로 비교적 높고, 가격대도 있어 요즘은 아마로네 기법을 일부 적용한 리파소 와인을 즐긴다. 솔직히 개인적으론 리파소 와인이 입맛에 더 맞는다.

특히 얼마 전부터는 템프라니요 품종이 나를 매혹시킨다. '조생종'이라는 뜻을 가진 템프라니요는 주로 햇살이 강한 스페인과 콜롬비아에서 재배된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독특한 향신료 향이 난다. 하지만 아직은 그 향이 어떤 향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당분간은 템프라니요를 더 먹어봐야 한다는 얘기다. 지인 중 한분은 와인을 '입안에서 굴리는 보석'이라고 정의한다.
요즘 입안에서 보석을 굴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건설부동산부 부장·부동산 전문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