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김정은, 과연 호랑이 등서 내릴까

한.미는 북핵 폐기가 먼저.. 北은 체제보장이 최우선
반대급부는 '후불'로 줘야

'북핵 변주곡'이 한반도 안팎에서 현란하다. 남측 예술단은 곧 '봄이 온다'는 타이틀로 평양 공연에 나선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극비리에 방중했다. 그러나 미국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로 짜인 매파 삼각편대가 일으키는 찬바람 탓일까. 봄바람 사이로 냉기류도 교차한다.

남.북.미.중 '북핵 4중주'가 갈채 속에서 혹은 불협화음으로 막을 내리느냐 갈림길이다. 관건은 북의 선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란 목표를 밀어붙일 기세다. 볼턴은 "북한이 진정 비핵화 대화를 할 준비가 안 됐다면 미.북 정상회담은 매우 짧은 회담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정상회담 준비위에서 남북 평화공존을 강조했다. 즉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면서다. 통일이 아닌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를 제시한 셈이다. 문제는 로드맵이다. 정부 일각에선 CVID와 북한에 대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체제보장(CVIG)'을 맞바꾸는 식으로 대타협이 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남.북.미 정상회담 추진 구상이 거론되는 데서 읽히는 기류다.

그러나 김정은의 수용 여력이 문제다. 최근 본지 주최 통일포럼에서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도 체제개방을 감내할 북의 능력에 회의감을 표시했다. 다른 전문가는 더 근본적 의문을 제시했다. 현재 33세인 김정은이 향후 60여년 세습정권을 이어가도록 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당한가 하는 물음이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미국이 북한이란 '국가'의 안전을 문서로 보장하는 건 이론상 가능하다. 하지만 '세습정권'에 대한 북 주민의 민심 이반을 미군을 보내 막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리비아를 42년 철권 통치한 카다피의 비참한 말로를 북한 정권인들 모를 리 없다. 그는 미국으로부터 체제유지를 보장받고 핵을 포기했지만, 5년 후 시민군의 총에 맞은 뒤 시신은 푸줏간 냉동고에 걸렸다.

북 세습체제도 진퇴양난이다. 도탄에 빠진 민생을 살리려면 개방해야 하지만, 그러면 주체사상의 허구가 드러나 정권이 무너질까 두렵다. '김씨 조선'의 3대 후계자도 호랑이 등에 탄 꼴이다. 형용모순인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호랑이'(북한 주민)를 어르고 달래며 내달릴 수밖에 없는 운명일 법하다.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위기감을 느꼈을 때도 북한은 대화에 적극적이었다. 상호 불가침협정이 포함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그 성과물이었다. 합의서 제1조가 '체제보장'이다. 북은 당시 이와 별도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도 응했다. 그러나 기념비적 문서들은 곧 휴지가 됐다. 북한이 2년 후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고, 해충(남한 등 외부 사조)이 들어올까 봐 '모기장을 친 개방'에 머무르면서다.

김정은이 이번엔 진짜 핵을 포기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대전환을 한 것인가. 아니면 핵동결 협상으로 시간만 벌려고 할 것인가. '진실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다.
물론 낙관도, 비관도 금물이다. 우리로선 북한이 핵 포기 이외에 다른 생존대안이 없다는 전략적 판단을 할 때까지는 촘촘한 대북제재를 이어가는 게 최선이다. 반대급부는 핵사찰 등 비핵화 일정에 맞춰 후불로 주는 게 안전할 듯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