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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혼란스러운 세계 무역질서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29 16:53

수정 2018.03.29 16:53

[여의나루] 혼란스러운 세계 무역질서

제2차 세계대전 후 1947년 출범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와 그 뒤를 이어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의 최대 성과는 관세 인하였다. 그 덕분에 각국의 국경은 낮아졌고, 세계화라는 큰 흐름도 생겼다. 그 배경에는 고관세 장벽으로 시장을 보호하면서 타국의 궁핍화를 꾀하는 것은 1930년대의 경제 대공황에서 보듯이 공멸에 이르고 만다는 교훈이 있었다.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추구해온 선봉에는 미국이 있었다. 2001년 시작돼 추가적 무역자유화를 3년 만에 끝내자던 도하라운드(DDA)는 미국 등 선진국과 중국, 인도 등 개도국의 이해관계 충돌로 실패했다. 협상의 피로감이 쌓이고, 자유무역에 대한 열의가 식어가는 때에 일어난 반세계화 정서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은 세계무역 질서에 큰 혼란을 주고 있다.


처음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등장했을 때 어려워진 미국 제조업을 부활시키기 위해 덤핑조사 등 일부 보호주의적 조치 강화 혹은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면서도 반시장적 조치를 구사하곤 하는 중국 길들이기 정도로 전망했다. 집권 2년차인 올 들어서 미국은 특히 전 세계를 상대로 국가안보를 이유로 수입철강에 대한 고관세 부과 명령을 내려놓고, 이를 선별적으로 유예해주면서 그 대가를 챙기고 있다. 제일 먼저 타결했다는 우리나라에는 추가관세 부과대상에서 빼주는 대신 쿼터를 앵기고 다른 현안도 자국에 유리하게 풀었다. 수입쿼터 설정은 WTO 규범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모두가 버리자던 관리무역의 전형이다. 이 정도 되면 보호주의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큰 시장과 구매력을 무기로 한 '통상 패권주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미국의 통상정책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올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손에 잡히는 성과를 올려야 할 뿐 아니라 그의 임기도 2년 이상 남아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 통상정책 요로에는 강경매파 인사들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도 일부 미국상품에 관세를 올려 맞불을 놓겠다고 한다. 1조2000억달러 가까이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를 헐값에라도 대량매각해버리면 세계 금융시장에 큰 파장이 올 것이다. 미·중 양국은 서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 확전을 경계하면서 일시 봉합되더라도 갈등은 쉬이 끝날 것 같지 않다. 당연히 우리 경제에는 좋을 리 없다. 우리 수출의 37%가 미·중 양국에 치중돼 있기 때문이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우리 옛말이 있듯이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캐나다 등 교역 규모가 세계 10위권 내 국가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작년 이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과 최근에는 철강 문제 해결에 부심해왔다. 이제 더욱 장기적으로 다음 단계에 대한 전망과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미국의 행정부·정치권·업계 등과 다양한 대화채널을 유지·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미는 동맹이다. 특히 지금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기다. 동맹이 통상에 유리하게 작용해야지 그 반대가 돼서는 곤란하다.
EU, 일본 등과 보조를 같이해 미·중 간 무역전쟁을 진정시키는 노력을 하는 한편 미·중 이외의 수출시장 비중을 더 늘려가는 다변화 노력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1~2년 내 발효될 것으로 예상되는 환태평양경제협력체(TPP-11)에는 가입을 준비해야 한다.
지역협력의 테두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양자게임에서 벗어나 지역주의, 다자주의 복원을 위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김종훈 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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