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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Culture] 33, 정경화이기에 가능한 숫자

조윤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29 17:13

수정 2018.03.29 17:17

6세에 바이올린 시작해 고희 맞은 올해, 33번째 앨범
제 음악은 위로예요. 사랑하는 관객에 위로 드리려 평생동안 1만% 노력했어요
처음으로 시도해본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내 속에 모든걸 들려드리고 싶어요
[yes+ Culture] 33, 정경화이기에 가능한 숫자

"내 음악은 위로입니다.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 음악 속으로 끌려들어가 함께 방황하고 미움도 받고 사랑도 느끼는 게 바로 음악이 줄 수 있는 위로예요. 그걸 주기 위해 평생 동안 1만% 노력했어요. 왜냐구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게 관객이니까요."

감히, '현 위의 인생 70년'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연주자가 몇이나 될까. 자신이 설명하는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이, 오직 이름만으로 전설이 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사진)가 70세를 맞은 올해, 33번째 앨범으로 돌아왔다.

고희(古稀)와 33.

6세에 바이올린을 잡은 뒤 70세까지 거의 평생을 바이올린과 함께한 그에게 33개의 앨범 숫자는 어찌보면 작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구한 클래식 역사에서 33번째 음반을 낸 연주자를 찾기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경화는 최근 서울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제 이름 앞에 자꾸 '레전드(전설)'라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그때마다 몸이 근질근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끔찍하다"며 크게 웃었다.
오랜 기간 '레전드'로 남을 수 있는 비결에 대해서는 "어쩌다보니, 하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며 눙쳤다.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6세 바이올린을 잡은 그는 소위 말하는 천재였다. 두 번의 레슨만에 한 번 들은 모든 곡들을 현 위에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음악적 재능을 드러냈다. 9세에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멘델스존을 협연했고 13세의 나이에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이반 갈라미언을 사사했다. 1967년 당시 최고 권위의 미국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1970년 영국 런던 로열페스티벌홀에서 앙드레 프레빈 지휘로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연주하며 단번에 유럽 클래식계의 스타로 부상했다. 당시만 해도 유럽 클래식 무대에서 동양인 연주자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강렬한 카리스마와 화려한 음색으로 '동양에서 온 마녀'라는 수식어가 붙은 정경화는 그렇게 유럽 클래식계 커다란 돌풍이 됐다. 이후 클래식의 명문 레이블인 '데카'와 EMI에서 서른장이 넘는 앨범을 발매하는 동안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타이틀을 놓치지 않은 그는 어느새 많은 이들의 기억과 현재 속에서 거장으로 각인됐다.

그런 그에게 2005년 갑작스러운 왼손 손가락 부상은 음악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였다. 은퇴를 선언하고 5년간 줄리아드에서 교수로 생활하다 2010년 무대로 복귀했는데, 정경화는 이를 '기적'이라고 불렀다.

화려하게 재기한 정경화의 행보는 여전히 거침없었다. 2016년 평생 숙원으로 남아 있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녹음한 데 이어 2년 만에 새 앨범 '아름다운 저녁'을 내놨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포레와 프랑크, 그리고 드뷔시의 작품들이 담긴 프렌치 앨범이다.

처음으로 시도한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과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비롯해 포레의 '자장가',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 드뷔시의 '아마빛 머리의 소녀' '아름다운 저녁' 등이 실렸다. '음악적 동반자'로 불리는 케빈 케너가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매번 앨범을 내니까 익숙하지 않을까 싶지만 사실 '이렇게 힘들어서 죽겠다' 싶을 정도로 모든 앨범에 온 기력과 정성을 들인다. 레전드면 뭘 해도 쉽게 쓱쓱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뭘 해도 아직도 이렇게 기를 써야 하고 힘이 든다"고 했다.

평생을 바이올린과 함께했지만, 여전히 그는 현 위에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기 위해 온 마음과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이제 체력이 떨어지니까 음이 빠지고 활에서도 지저분한 소리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수치스러움에 머리를 쥐어뜯던 시기는 지났다.
항상 '이게 마지막 연주다'라는 마음으로, 그 안에서 있는 감정을 다 전달하려 노력한다. 어떻게든 내 속에 있는 걸 다 빼내서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평생 계속해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 거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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