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월드리포트

[월드리포트] 규제의 역설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30 18:10

수정 2018.03.30 18:10

[월드리포트] 규제의 역설

규제완화 논쟁이 핫이슈다. 보호무역주의와 자유무역주의가 충돌하는 가운데 관세보복 논쟁이 벌어진 것도 규제 논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내적으로도 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경쟁력이 제고된다는 게 대세론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약이 되는 규제와 독이 되는 규제를 구분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전반적으로 독이 되는 규제는 행정편의주의에서 비롯된다. 시대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를 혁파하지 못한 채 행정편의에 얽매여 방치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시대가 복잡다단해지면서 부처 간 소통부재와 밥그릇 싸움 탓에 이중규제가 불거지는 경우는 부처의 전반적인 행정 혁파가 안 된 경우다. 독이 되는 규제는 혁신을 통해 단순화하거나 완화하는 게 합당하다.

그러나 규제를 완화해야 한답시고 각종 규제완화 민원을 수용하는 것 역시 독이 될 수 있다. 건강한 규제는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보약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중 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품목을 유독 타깃 삼아 통관을 엄격히 하는 중국의 행보에 원성이 자자했다.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 허가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생산한 제품이 포함되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사드 갈등과 맞물려 중국 부품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한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다른 업종에 대해서도 이 같은 논리가 퍼지면서 찬반 논쟁을 낳았다. 대표적인 업종이 화장품이다. 중국이 화장품 통관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대면서 한국 화장품 업체들의 중국 수출이 세관에서부터 막히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사드보복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중국이 소비자와 직결되는 소비재의 유해성에 대해 통관 기준을 엄격히 하는 건 시대적 흐름이 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과거 중국으로의 수출 기준이 낮았지만 점점 그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도 점차 엄격한 일본 수준을 타깃으로 화장품 성분기준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적당히 만들어 쉽게 통과되는 내성에서 벗어나 깐깐한 기준에 맞출 수 있는 제품 경쟁력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도 깐깐한 제품 안전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그에 맞춰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다른 수출시장의 불확실성 파고를 넘을 수 있으며 프리미엄 시장 선점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미국과 중국 간 벌어지는 무역전쟁도 규제의 역설 관점에서 긴 호흡으로 내다볼 필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대적인 대중국 관세보복 폭탄을 투하하면서 중국이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물론 중국은 외연적으로 문제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어차피 중국 내수시장을 키우고 있기 때문에 수출 타격에 따른 문제를 내수를 통해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가 얽혀 있어 미국이 원하는 대로 중국만을 표적 삼아 보복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중국은 경제성장률이 예전만 못하게 중고속성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보복이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국 규제 강화는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전기가 될 수 있다. 기업은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새로운 루트를 찾는다. 자본도 확장의 본능에 충실해 막힌 길을 우회해 합류하게 돼 있다. 미국의 진입장벽이 중국의 혁신을 일깨우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장벽으로 미국 기업들의 숨통이 트일 수 있겠으나 그만큼 생존본능은 떨어지게 돼 있다.

규제는 환경과 주체에 따라 상대적이다.
독이 되는 규제와 약이 되는 규제를 구분하는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베이징 특파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