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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꽃 보다 단잠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02 17:24

수정 2018.04.02 17:24

[윤중로]꽃 보다 단잠


봄이 온다. 시인 이성부가 봄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고 했듯 벚꽃의 화사함을 동반하고 여느 해처럼 성큼 다가온다. 여의도 '윤중로'는 화사한 봄을 한껏 누릴 수 있는 명소다. 국회의사당을 끼고 한강변을 따라 이어진 1.6㎞ 벚꽃길 윤중로는 벚꽃 축제일(올해는 4월 7~12일)이 되면 꽃 천지다. 1600여그루 왕벚나무 벚꽃들이 봄볕에 반사되는 한강 물빛과 어우러지면 장관이다.

봄은 화려한 꽃길만 동반하지는 않는다.
나른함은 봄의 또 다른 모습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신체는 일조량이 늘고 활동량이 증가하면서 춘곤증을 불러온다. 봄을 연상시키는 단어들에 화사함, 화려함, 나태함, 게으름 등 이질적 조합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출근길 여의도 지하철역을 나오면서 '수면카페' 전단지를 받았다. '30분이라도 다리 뻗고 자자' '더 이상 피로를 쌓아두지 마세요' '도심 속에서 즐기는 편안한 나만의 힐링 공간' 등 호객 문구가 가득했다. 잠자기 적절해 보이는 어둑한 조명에다 안락한 안마의자를 배치한 사진도 곁들여 호기심을 자극했다.

피곤한 직장인을 상대로 '밥보다 낮잠'이 필요하다며 휴게 공간을 제공하는 업태는 사실 새롭지 않다. 몇 년 전부터 사무실 밀집지역인 서울 명동, 강남 등에서 생겨나기 시작해서 100호점까지 낸 곳도 있다고 한다. 점심 시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이용이 힘들 정도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봄을 맞은 직장인들이 회사 내 휴게 공간에서 잠깐이라도 졸음을 쫓을 수 없다면 점심 한끼 굶더라도 카페에서 단잠을 선택할 여지는 많다.

눈만 감고 있어도 피로가 풀리는 경험은 누구나 한번씩 있다. 눈은 신경에너지의 25%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고, 뇌와 직결된 조직이어서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있으면 뇌를 쉬게 해 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미국 시카고대 에드먼드 제이콥스 박사는 "눈의 근육을 편안하게 쉬게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고민은 해소될 수 있다"고까지 했다. 직장인들의 단잠 쏠림 현상이 이해가 된다.

단잠의 효과는 차치하고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있다. 점심 한때 벚꽃의 화려함을 즐기기보다 쪽잠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 사회 직장인들이 유난히 뇌 피로에 취약해서일 것이다. 수면카페에 대한 팩트 체크를 해보지 않았지만 한국, 일본 정도에만 유행하는 문화다. 우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장 수준인 노동시간이 꼽힐 수 있다. '빨리빨리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적 배경도 한몫할 것이다. 급격한 사회 변화의 산물일 수 있다. 저출산과 인구절벽, 초고령사회 진입, 핵가족을 넘어서 1인가구화 등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사회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뇌는 피로하다.
여기에다 새롭게 등장한 정보기술(IT) 기기를 통해 정보는 쉴 새 없이 쏟아지면서 뇌는 완전 '그로기' 상태가 된다.

봄은 왔다.
하지만 꽃보다 단잠을 선호하는 '만성피로' 사회의 봄은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기에는 여러모로 어색하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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