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래서 여자는 안돼".. 견고한 유리천장에 펜스룰까지

구자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04 15:40

수정 2018.04.04 15:40

[fn스포트라이트-일상 속 성차별](4)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지난달 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세계여성의날 행사에서 마련한 '성평등 노동 의미 찾기' 게시판. 이 곳에는 '유리천장, 임금차별 X'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의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지난달 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세계여성의날 행사에서 마련한 '성평등 노동 의미 찾기' 게시판. 이 곳에는 '유리천장, 임금차별 X'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의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었다.

"결혼은 언제 할 건가? 우린 오래 일할 사람 필요한데.."
요즘도 많은 여성들은 구직 활동을 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실제 한국가스안전공사는 면접에서 육아와 출산으로 업무가 단절된다며 여성 지원자 점수를 조작, 합격권이었던 여성 응시자 7명을 대거 탈락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또 금융감독원의 은행권 채용비리 특별검사에서 남녀 차등 채용이 이슈로 떠올랐다.

여성들이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 정작 사내에서 임금과 승진 등에서 또 다른 형태의 성차별을 겪는다.
최근에는 미투(MeToo, 나도 말한다)의 반작용으로 ‘펜스룰’이 떠오른다. 여자와는 같이 일하지도, 말도 섞지 않겠다는 것이어서 여성들은 이래저래 난처한 상황이다.

■남녀간 임금 격차 OECD 1위.. 여성 임원 2%뿐
우리나라의 남녀 평균임금 격차 심화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PwC)가 OECD 회원국의 남녀 평균임금 격차를 조사한 결과, 한국이 37%로 가장 컸다. OECD 회원국 평균 16%의 2배가 넘는 것이다. 성별 임금 격차는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의 걸림돌로도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남녀 임금차별은 세계적인 여자배구 스타 김연경 선수가 국내 프로배구의 새 샐러리캡(팀 연봉 총액 상한선) 제도를 비판하면서 다시 부각됐다. 김씨는 "여자 샐러리캡은 14억원(향후 2년간 동결)인 반면 남자 샐러리캡은 25억원(1년에 1억원씩 인상)이다. 또 여자 선수만 1인 연봉 최고액이 샐러리캡 총액의 25%를 초과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까지 추가했다"며 "왜 점점 좋아지는게 아니고 뒤처지는 것일까. 이런 제도라면 나는 한국 리그가 아니라 해외에서 은퇴해야 할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은 연봉 뿐만 아니라 승진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다는 게 공공연한 현설이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년 500대 기업 여성임원 현황’에 따르면 임원 중 여성 비율은 2.7%에 불과했고 336개 기업에는 여성임원이 1명도 없었다. 2014년 2.3%, 2015년 2.4%와 별 차이가 없다. 공공 부문에서 ‘여성 장관 30%’ ‘공공기관 여성임원 30%’ 선언에 민간기업은 10%도 버겁다.

임금, 승진 등에서 여성 차별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당장 영국에서도 여성 하원의원들이 소셜미디어 등을 중심으로 성별 임금격차에 항의하고 기업에 해결책을 요구하는 ‘페이미투(PayMeToo)’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프랑스는 정부 차원에서 기업의 남녀 임금 차별에 거액의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 프랑스 정부는 기업들에 남녀간 부당한 임금 차별을 감시하는 소프트웨어를 의무적으로 구축하도록 강제하는 노동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수시로 외모평가·성희롱..펜스룰까지
임금, 인사상 차별 뿐만 아니라 수시로 외모 평가와 성희롱 등에 노출되는 게 많은 직장 여성들의 고충이다. 화장을 안 하고 출근하면 "예의 없고 기본자세가 안 됐다"거나 "OO씨는 약간 글래머스타일 남자들이 좋아할 스타일인데 살만 좀 빼면 돼" "다리를 보니 흥분된다" 등 외모평가나 성희롱을 당했다고 여성들은 토로한다. "여자가 분위기 나게 애교 좀 부려라" "손님 왔는데 커피 타드려" "이래서 여자는 안돼" 등 성별 고정관념을 당연시하는 발언을 접하는 것도 일쑤다.

대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최근 한 대기업에서는 "사내 상급자의 술접대에 동원됐다"는 여성 직원의 주장이 나와 논란이 커지면서 동원 의심을 받는 여성 임원이 사표를 냈다. 사건 발생 당시 해당 조직 관계자도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이 회사에 근무한 A씨는 최근 퇴사 과정에서 부서 여성 상사 B씨가 남성 상사들을 만나는 술자리에 자신을 포함한 부서 여직원들 참석을 강요했을 뿐 아니라 술까지 따르게 했다고 진술했다. 또 여직원들을 노래방에 함께 데려가 남성 임원들과 춤을 추도록 했다는 것이다.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자 여성을 업무 등에서 배제하는 직장 '펜스룰' 현상도 우려된다. 펜스룰은 구설수에 오를 수 있는 행동을 방지하기 위해 "부인을 제외한 여성과는 단 둘이 저녁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과거 발언에서 비롯됐다.


한국여성민우회 서지영 활동가는 "미투 운동을 의식해 여성들을 또 다시 배제하는 것은 문제 해결 방안이 아니고 사내 남성 중심 문화를 바꾸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며 "은행권 채용에서 드러났듯 여성은 채용 단계부터 배제되고 있는데다 남녀 임금차별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시행하는 임금공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스포트라이트팀 박인옥 팀장 박준형 구자윤 김규태 최용준 김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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